그대가 받았어야 할 편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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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그대가 받았어야 할 편지 4




지금 우리가 살아내는 이 삶이

세련된 건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어요

기실 즉물적이 되고 마는 섹스,

그리고 물리적인 것이든,

심리적인 것이든

어이없는 폭력만 남을 듯한

이 시대에 얹혀있는 나를

사랑에 빠지게 한 당신을

내가 즐기는 건

그야말로 기막히게 달콤한 일이란

생각이 자꾸 들어요


당신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나 자신이 달콤해지는 만큼,

문득,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게 거의 없어서

사랑에 빠진 걸까요


그래서 당신에게서 자유롭게

내 '꽃'을 피울 수 있어서,

그래서 당신이

달콤한 건가 싶은 하루였어요


사랑이 깨지는 건

흔히 지나치는 사소한 순간에

사랑한다는 것을

자신의 권리로

착각하게 되면서일 텐데요


그렇다고 수시로 내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

앞서 걷게 만들며 당신의

뒷모습을 잠깐잠깐 보며,

당신이어서 보이는 사랑스러움을

내가 처음 본 것처럼

수줍어하지 않으며

즐기려는 나의 권리에,

당신이 어쩌겠어요


더구나 봄꽃 잎이 흐드러지게

바람에 날리는

이런 날이면 말이에요



당신은 그저 당신이니까

사랑으로 달콤한 것은

나 때문인가 봐요

혹시, 당신으로 비롯된다면

내 즐거움을 위해 내가

당신에게 집착하게 될 텐데,

그게 사랑이겠어요, 어디


당신만의 행복은

당신과 내가

헤어진 뒤에 빌어도

늦지 않을 거예요

내가 없는

당신의 행복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그런 바람일 테니까요


하지만 당신을 사랑하는 동안,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당신을 사랑하는

나를 즐기는 것일 거예요

따져보면, 결국 사랑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기 자신을

즐기는 것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그렇게, 당신도 분명

언젠가 나를 사랑하게 된

당신 자신을 즐기는 게

당신의 사랑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걸 알게 되겠지요


(내가 당신과 헤어질 때는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신과 내가 하는 사랑이

우리에게

즐겁지 않아서 일 거예요


그렇게 사랑을 버리면,

그 후로도 우리가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남겠지요


하지만, 사랑이 즐겁지 않다고

칭얼거리는 나를

어쩔 수 없이 가엾게 본 당신이

'이해'하려는 순간부터

나는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남기는

글러먹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런 나를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그냥 버리는 게 당신에게도,

내게도 더 나은 결정일 거예요

사람은 이해하는 게 맞아도, 사랑은

이해하는 척밖에 할 수 없을 테니까요


혹시 그때가 되면

아주 냉정하게 돌아서 줘요

당신 속에 남게 될

사랑스러운 나를 위해서요


아무도 당신과 내가

그렇게 될 거라고 말하지도 않고,

지금이야 그럴 리 없다고

눈을 크게 뜨고 부정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미리 말해 두는 거예요

그리고 당장은

그러는 게 사랑일 걸요)




방금, 헤어졌는데

다시 보고 싶네요

당신은 몰라도

그런 나를 내가 즐겨요

언젠가 당신도 나처럼

당신을 즐겨줄 거지요?


그리고, 내가 어른을 사랑할 만큼

어린애가 아닌 건 확실하거든요

당신은 당신이 어른인 거 같아요?

어른이라면, 누가 사랑하겠어요

사랑을 처음부터 가르쳐야 할 텐데,

내가 그런 숙맥까지는 아니거든요!



할 말이, 왜 항상 당신을

들여보내고 나서

마구 생기는지 알 수 없어요

가슴이 헛헛해져서 그럴까요


우리, 언제 봐요? 내일?

옷 갈아입고, 밤늦게 잠깐

또 봐도, 나는 좋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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