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받았어야 할 편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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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그대가 받았어야 할 편지 3




방금 내린 커피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보며

당신이 내게,

왜 당신이 사랑스럽냐고 물어서,

순간 당황한 내 모습을 보였어요


모든 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그냥 던진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의 그런 질문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아이는 아녜요


당신이 왜 사랑스러운지를 따져

당신의 사랑스러움을

한정하지는 않을 거예요

당신을 그 '왜'에 가두고,

당신이 그 울타리를 벗어나면

내가 당신을 버려야 해요?



말이 나와서 말인데,

우리가 헤어질 때라면 나는

당신을 마주 보면서,

삶이 가진 여정의 일부처럼

당신을 보낼 거예요

물론, 당신이

그러겠다 할 때 말이에요


비관주의자의 사랑이

대개 그런 게 아닐까 싶지만,

그 순간이 내게 남게 될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테니까요


그게 오늘이 아닌 덕분에

당신의 사랑스러움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걸

나는 감사하고 있어요


삶에서 확실한 행복이란

'내'가 그렇다고 할 때뿐인데,

당신을 보는 오늘이예요

당신을 볼 수 없었던 어제보다

더 행복한 건 어쩔 수 없어요


우리가 앞으로 하게 되는 약속을

보장하는 것은 오로지

당신과 나 사이의 사랑뿐인 데도,

사랑이, 우리가 헤어지는 데에

그 약속을 필히 이행하려고

잠깐은 멈춰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언젠가 당신이 헤어져야 한다면

나는 그럴 거라고

얼마든지 말할 수 있을 거예요


내가 당신에게 무릎을 꿇으면 보이는

당신의 발뒤꿈치를 보며

귀찮게 매달리게 될지 어떨지,

당신과 헤어지는 나를

나나 당신이나 아직 본 적이

전혀 없으니까 모르는 게 당연해도,

내가 정말 그렇게 매달려도

당신이 냉정하게 돌아선다 해서

나는 당신을 나무라지 않겠어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당장은 사랑하고 있으니까

말할 수 있는 행복 가운데

하나라는 걸 당신도 알겠지요

아, 사랑하고 있어서

이별을 말할 수 있는 것,

이 모순 덕분에 사랑이 더욱

달콤한 건지도 모르겠어요)


적어도 이별을 이야기하는 동안

당신과 나는 이별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다, 이별이란 말을

입에 담기가 두려워질 때가 오겠지요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기억해둬요, 그때부터 당신과 나는

이별하고 있는 것일 거예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당신 탓이지만, 당신이 나를

사랑하게 되지 않는 것도

당신 탓일 것이거든요

그래도 내가 돌아선 당신을

사랑하지 못할 건 없잖아요?

그것이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그것쯤 받아들이지 못할까요


당신을 사랑하는 것, 이게

무척 신기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거밖에 또 뭘 하겠어요

당신이 나와 헤어지는 게 즐겁겠다면

그렇게 해주는 것이 사랑일 테지요


그러나 아직은,

하지 못한 것들 때문에

아쉬워하는 게 삶이라면,

흔히 버킷리스트가 짧을수록

풍성했던 삶으로 보이잖아요

우리는 헤어진 적이 없으니까

나중에 우리의 이별도

거기에 넣어야 하는 건지

지금은 모르겠어요


그래서 말인데, 지금은

그 리스트 맨 끝에 한 줄 넣어두고,

그걸 삶에 넣을지, 사랑으로 쓸지

그때 생각하기로 할까 봐요

당신과 헤어진 적이 없어서

어디가 좋을지 정말 모르겠어요



당신이 눈을 반짝거리며

나를 보는 모습을 오래 보려면,

서둘러 나가야겠어요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건 괜찮지만,

당신이 나를 기다리는 건 못 참겠어요


그럼, 좀 이따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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