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대가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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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그는 그대가 만드는 것




우리가 사랑이란 말을 자주,

너무 쉽게 써서, 사랑에

무뎌지는 경우는 없을 겁니다

누군가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그게 사랑인지 아닌지

분별할 수 없다면, 다시 말해

자신이 사람에 무뎌졌다 싶으면,

그대는 그대와 그대의 삶을

토닥거리며 살 수는 있어도

누군가를 사랑하기엔 늙은 겁니다

다른 한편, 사랑하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이 많을 때는

착각에 빠진 건지도 모릅니다
사랑이라면, 김춘수의 '꽃'을 넘어,

수사적인 표현으로 치부했던

사랑에 눈먼다는 말이

그대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에

곁에서 보는 우리가 동의하게 될 겁니다

일상에서 받고 건네던 의미가

사뭇 달라지는 게 보일 테니까요

어쨌든, 사랑이란 말이 흔해진 것은,

심정적으로 사랑을 낭만과

나란히 두게 된 탓일 겁니다

이 말은, 그대가 지금 사랑하지 않고 있다면,

그대 탓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됩니다


오늘이 우리 삶의 가장 젊은 날이라면,

오늘 우리가 죽는 것이

가장 젊은 날에 죽는 거라는 것도
이해할 겁니다

오늘 죽는 건, 그래서 억울합니다

오늘밖에 없는 삶은,

백 서른두 살 삶의 오늘이어도

가장 젊은 날에 죽는 것이며, 그래서

어떤 죽음이든 당연하지 않습니다

허접한 이야기는 할 만큼 하면서

죽음을 말하지 않는 것은

진실을 감추고 있는 것이라는

헤밍웨이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죽음은 언제든 좀 더 깊게
사귈 수 있는 친구와 같습니다

사랑에 빠진 이가 흔히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사랑처럼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가져가는

단 한 가지 의미이기 때문이며,

그것이 가장 젊은 날에

찾아온다는 아쉬움이

우리의 무의식 속에 담겨 있어

내일이 중요하지 않게 되는 탓일 겁니다

이 말에 밑줄을 긋는 이가

드물어서 덧붙이면,

사랑에 조건이 따를 때는

그게 사랑인가 자문하라고
자주 쓰고 있습니다만,

'사랑해서, ' 또는 '사랑하기에'

해야 하고,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나쁩니다

쉽지 않지만, 사랑을 포함해

"모든 것에 끝이 있다"는 것에

익숙해져서 나쁠 게 없을 겁니다


여전히 쉽지 않아 보이는데

무엇이든 사랑하되, 의미를 주지 않는

연습을 해온 지 꽤 됐습니다

늘 하는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우리가 의미를 주고,

우리가 준 그 의미 때문에 우는,

때로는 좀, 한심한 동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스럽게,

가장 건강하게 사랑하는 길은

그를 포함한 누구에게든

의미를 주지 않는 것일 겁니다

관능이 방해를 하는 바람에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다면

최소한의 의미만 주는 연습을 합니다

아니, 미니멀리즘도 좋지만,

그것도 오직 그 하나의 의미에
매몰될 염려가 있어 위험합니다

사랑을 잃을 수도 있을 겁니다

어떤 의미이든 마찬가지인데,

아무리 사소해도 자신이 건넨 의미에

자신이 구속되는 건 흔한 일입니다

사랑이 다가왔을 때의 이야기여서

너무 낭만적이 아닌가 싶지만,

누군가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그냥 놔둬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대가, 그대가 진행하는

쇼이건, 이 삶의 주인공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할 듯싶습니다만

그대 삶의 가장 젊은 날,

누군가가 그대를 사랑하는데, 그리고,

그것이 그의 사랑에 불과한데,

도대체 그대가 남의 사랑에

시비를 걸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내일, 그대 자신이

누군가의 사랑스러움에 빠질지 모르고,

그 내일이 그대에게는

너무 어린 날이어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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