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불러주기
언젠가도 쓴 듯합니다만,
고백은 하는 게 아니라고,
그에게 돌려줘야 할 것을
돌려주는 것뿐, 고백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돌려달라고 그가 요구할 때
마치 그동안은 잊었던 듯
반색은 하지 않는 얼굴로
천연덕스럽게 건네주면
훨씬 더 나은 걸,
제풀에 돌려준다고 생색을 내려는
그대가 한심한 거 아니냐고,
채였다느니, 물먹었다느니
눈물, 콧물 범벅해서
못 볼 꼴 만들지 말고
그냥 사랑을 하라고,
그로서는,
그대의 고백이 반갑거나
고마울 수 있다고 해도
타인 가운데 하나였던
그대의 말 몇 마디에
머릴 싸매고 고민해야 할 일이냐고,
그 고백을 어떻게 쓰든, 또,
받고 안 받고는 그의 맘이지
그대의 마음이냐고,
아니, 그가 그대를
차거나 물 먹일 이유는
아예 있을 수가 없다고,
왜 그가 마른하늘 아래
그대의 고백 때문에
느닷없이 매정한 인간이 되거나
쓰레기가 되는 거냐고,
비록 비껴 서서
즐길 수밖에 없다 해도
떡고물 흘리듯
그가 때로 던지는 다정함을
맘대로 즐길 수 있는 것이,
고백을 해놓고는,
그가 주문한 것도 아닌데
그대 자신을 빼앗긴 듯
아까워하거나 억울해하는 것에
비할 거냐고,
그대의 고백으로
그대 자신이 구속되는 동안,
불쑥, 그에게 사랑이 생기냐고,
그가 그대를 사랑하게 될 만큼
그냥 사랑하라고
그대 자신의 사랑에 취해
뭉기적거리다가,
그의 속에 그대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를
곧바로 확인하지 못하게 하는 건
쓸데없는 고문 아닌가 싶지만,
그 이기심을 갖고
그대를 고문하는 이는
그대 자신 아니냐고,
그가 그대를 사랑하면,
그가 말하기 전에 알게 될 거라고,
서둘지 말라고, 어쩌다
열여섯에 만나는 사랑이나
스물여섯, 서른여섯,
마흔여섯에 만날 사랑이
모두 처음이므로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오히려 달콤함은
더 이상 키가 크지 않을 때
느끼는 사랑에서
훨씬 진하게 느낄 거라고,
<어린 왕자>의 시선으로 봐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건 기적인데,
그야말로, 그 기적에 매달려서
하염없이 속을 끓여야겠냐고,
그래서, 그저 사랑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