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편의점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염세 철학의 주창자로 알려져 있지만,
쇼펜하우어는 기실, 궁극적으로는
행복을 얻기 위한 자기 극복을
말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행복한데, 기왕 태어났다면
일찍 죽는 것이 행복하니까,
그게 안 되면
'자살을 택하라'라고 했다지요
그런 염세주의, 인생 회의론,
자살론을 주장했던 쇼펜하우어, 그는
일흔둘까지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 사실에 배반감을
느낄 수도 있겠는데,
나름 그의 속을 뒤집어보면,
짧은 인생의 처연함에
복수하려고 살만큼 살았던
철학자였다고, 그를
해석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한 마디로, 죽지 않고
쓸데없이 사느니,
"행복하라"는 거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지금 행복을 생각하고 있다면,
방관자로서 장담하는데,
당신은 불행한 게 맞습니다
그런데 그걸 거꾸로, 이제
불행을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이 행복한 걸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불행해서
불행을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그게 우리 주위에 행복보다
불행이 흔한 이유이고, 우리는
그래서 자주 행복을 이야기합니다
혹시 행복한 당신이 느닷없이
행복하다고 말할 때는
이전의 불행 때문일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행복할 때 굳이 행복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복이 뭔가를 알려줄
도구라고 할만한 것은
행복하지 않은 오늘입니다
불행해서 돌아본 자신이,
근사하게 그린 오늘 이후의
오늘보다 나은 오늘을
행복으로 갖고 살아갑니다
불행을 따져보면, 그 근원은
오지 않은 미래입니다
미래만 없다면,
오늘이 행복한 것일 수 있지요
(과거 역시,
좋았던 '그때'때문에
오늘이 불행하기도 합니다만,
지금 돌아본 '그때'가 좋은 건,
아마도 체념 덕분일 겁니다
불가역적 현실 앞에서
우리의 행복에 기여하는
심리적 자기 방어 기제가,
이 체념인 거지요
사춘기를 벗어날 때도
체념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게 하는 역할, 결과적으로,
행복할 여지를 넓혀줍니다)
정리하면, 과거와 미래가
불행의 원인일 때
오늘 밖에 없는 삶에,
이 오늘이, 행복하기
가장 좋은 때가 됩니다
많은 현자들이 이 '오늘'에
가치를 두었습니다만, 우리는
대체로 내일에 오늘을 떨이로 넘기지요
지금 좀 불행해도 괜찮다는 겁니다
전에도 썼듯이, 그런 우리는
행복에 대해서는 야박하지만,
불행에 대해서는 관대합니다
행복할 때는 불행을 보고
연민을 느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행하면 자신에
자기 연민을 갖게 되며
공감능력이 커집니다
역사상 지혜를 가졌던 많은 현자도
뭔지 잘 모르는 행복을 가르치기보다
불행을 깨는 방법이나 태도에 대해
조언을 즐겼던 이유일 겁니다
삶이든, 사랑이든,
행복이든 가까워야 느낍니다
삶을 느끼려면 죽음 근처에,
사랑을 느끼려면 무심한
그의 옆에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역설적이게도
불행을 멀리 하려 할수록
행복도 멀어지기 마련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불행을 흔쾌히
받아들이면 행복도 곁듭니다
이런 삶이면 오늘을,
불행해도 나쁘지 않은 이유와
행복해해도 좋은 이유로
같이 써도 좋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