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편의점
가슴에 손을 얹고 살펴보면, 우리는,
예쁘다는 것에는 쉽게 사랑을 담지만,
아름답다는 것과 사랑을
연결하는 데 어려워합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냐 싶은데,
그러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마구 다루고 싶지 않은
경외 때문이라고 봅니다
예쁘다는 게 서정적이며
형이하학적이라 하면,
아름답다는 건 서사적이며
형이상학적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예쁜 걸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아름다움이 쉽게 오염되기 때문이지만,
우리는 아름다운 강아지가 아니라
예쁜 강아지를 사랑하며,
아름다운 산이 아니라 거기
빛이 고운 예쁜 단풍을 사랑합니다
허접한 사설은 멈추고,
왜 그런 생각이
이 편의점에 입점했을까요
키이라 나이틀리를 처음 봤을 때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그를 구글링 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나이틀리는
찾을 수가 없었고
카메라 아니면, 그 저편에서
자신을 바라볼 누군가를 향한
애매한 시선이나 포즈에서
가엾다는 느낌을 받은 겁니다
바로 그 섭섭함으로 얻은 게,
누구든 살아 있다면
움직이는 게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게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었지요
그가 아름다운 건
영화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이거나,
영화 '퓨어(Pure, 2002)의
루이즈인 겁니다
사랑이 제한된 액자나 틀,
다시 말해, 어떤 제약 안에 있을 때
제법 달콤한 맛을 낸다면,
아름다움은 틀이나 액자에 가두면
스러지는 건가 싶었습니다
한 마디로 아름다움은,
마치 시간의 흐름처럼
그때, 그때
날것으로 즐기는 것이지,
묶어두거나 가둬
소유하는 것이 아닌 게지요
예를 들면, 정물화는
정적靜寂을 갖고 있을 뿐
아름다움을 발산하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내 눈에 그 정물은
여지없이 죽었거나, 죽어가는 것일 때,
먹이를 나르는 뙤약볕 아래의 개미나
처마 아래 비를 피하며
젖은 머리에서 빗방울을 터는
당신의 뒷모습이 하염없이
아름다운 건, 그게 나처럼
살아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또한 아름다움은 미美와도 다른데,
미美가 시각적 충족감이라면,
아름다움은 미를 포함한
확장된 인식으로 객체에 대한
당신이 겪는 능동적이고
비시각적인 매혹도 포함될 겁니다
당신도 나와 같겠지만,
나는 죽은 자가 아닌
산 자에게서만 아름다움을 봅니다
그게 내 탓은 아닙니다
아름다움은 느끼는 것이지
세뇌당하거나 습득하는 게 아니니까요
누군가 내게, 그런 게, 혹은
저런 게 아름다운 거라고
가르쳐주거나, 나 스스로
배운 적이 전혀 없으므로, 내게
아름다움은 본태적 인식일 겁니다
아름다움을 즐기지만,
미학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공부할 생각은 아예 없습니다
그걸 따지면, 그 아름다움을 내가
부수게 되는 건지도 모르니까요
당신이 살아있어서 당신을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은 내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움과 예쁨이 같은 뜻인 듯
마구 섞어 썼습니다만, 아니었습니다
자연에 없는 원이나 직선 같이
아름다움은 조화와 균형으로 읽지만,
예쁨은 그렇게 정리된 것을 넘어
화가의 붓질이 만드는 불규칙한 선처럼
사랑스럽다는 감성이 버무려집니다
물론, 당신도 사랑받기 전에는
아름다움을 자랑하겠지만,
그 아름다움이 가진
조화와 균형이 흐트러질 때
비로소 내가 당신의
예쁨을 보고 사랑하게 될 겁니다
아름다움 뒤에 예쁨을 아는,
이 순서가 바람직한 것은
한때, 범접하기 어려웠던
당신의 아름다움을 품은 채,
이제는 예쁜 당신을 사랑하는 내가
당신에게 훨씬 정겨울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