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편의점
가을에 사랑을 쓰는 게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는
아닌 듯해서, 좀 더 씁니다
사랑해도 좋은 사람이 있을까
찾으려고 하면, 그렇게 될까
사랑해도 좋겠다고 생각한 그는,
이미 당신을 매혹한 사람일 겁니다
당신이 그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가 당신을 사랑하게 만든 거지요
당신은 당신 자신이
선택했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동물적 본능에 따라
그에게 끌린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하필 내가 왜 그런
인간에 미쳐서..."라고
자책할 건 없습니다
당신이 인간으로서,
'아! 나는 인간'이라는 걸
증명한 것이니까요)
저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은
'그런 사람은 없다'인데,
왜냐하면, 사랑은
그 안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주체는 당신이 아니라
사랑 자체라는 겁니다
사랑해도 좋은 사람은 없지만,
사랑하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혹시 그가 나의,
'내 인생의 그 사람'인데,
그냥 지나치는 게 아닐까,
고민은 하지 않아도 좋을 겁니다
그러는 당신은 그저, 지금
옆구리가 허전한 것일 수 있습니다
2002년, BBC에서 방송한
'Human Instinct"라는 인류의
진화와 도약적 발전을 설명한
다큐에 따르면, 몸에
어울리지 않은 균이 들어와
우리의 생명 유지에 방해가 될 때,
몸에 열을 내어 그 균을 죽이거나
면역체계를 강화시키고,
돼지처럼 하염없이 먹지 말라고
배가 차면 불편하게 만드는 것처럼
그가 '바로 그 사람'이 맞다면,
당신의 생각과는 달리
감각과 신경을 긴장시켜서
평소의 논리나 합리를 압도하는
당신을 만들어주는 까닭에
그가 '바로 그'라는 걸
모를 리는 없다고 설명합니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건 기적*'이란 말이
그럴듯해 보이는 건, 우리의 삶에
'바로 그'를 만나는 것은
내가 보채고 서둔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게
사랑이 가진 함정이지요
끊임없이 '그'를 찾다가
'그'를 만나지 못하면,
우리의 합리적 사고가
'그 정도의 사람이면, 뭐'로
현실과 타협하도록
'나'를 다독이게 됩니다
저 다큐에서는
둘의 유전자가 백 퍼센트
대척점**에 있을 때,
'바로 그, '로 느끼며
거기 미치지 못할 때, 다시 말해,
서로 비슷한 유전자를
조금이라도 갖고 있을 때
'그 정도면, 뭐. 대화가
이렇게 잘 통하는데, 서로
고쳐 가면 되지'로 그 선택을
합리화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지지고 볶는 희로애락의
시작이 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와 같은
합리적 사고의 회유를 잊고
자신과의 타협을 무시하면,
당신의 연애, 사랑, 결혼,
대인관계 등 모든 관계는
당신을 괴롭힐 겁니다
알다시피, 주어진 것이든,
마주친 것이든 간에
우리가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대개 습관으로 정해집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며
생각해 낸 최선의 태도에서
타인은, '어떤 사람인지, "
우리를 이해하게 됩니다
이 생각을 읽는 당신은
기호와 사랑을
구분하는 이가 틀림없을 텐데,
그대가 그를 사랑하는 데는
'바로 그'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바로 그 사람'이 아니어도
우리는 사랑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랑이든
영원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무시로 스러진다는 것을 품으면,
오히려 죽을 때까지 그를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스러진다는 것과 영원하지 않다는 것,
이 두 상념이 사랑에의 여유를 주고
사랑을 지켜주는 방파제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잘 모르겠다고 하지만, 그대는
그대가 이전에는 갖지 못했던 것을
그로 인해 갖게 된 것을 알 겁니다
상대의 사회적 위치, 재력,
외모, 미래를 위한 잠재적 능력이
그대가 그를 사랑하는
조건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대가 그를
사랑하게 될 때는 그런 조건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게 되어서
그 조건까지 긍정으로 보게 될 겁니다
그가 가진 조건은
삶의 굴곡을 따라가다 보면
해지고 닳게 마련인 것들입니다
잠재적 능력이라는 것도
현재의 각성일 뿐
미래를 말해주지 못합니다
그대가 갖고 갈 수 있는 건
그대 자신의 사랑뿐입니다
그리고, 그가 가진 것 가운데
필히 가져가야 할 것 역시
그의 사랑이라는 것도
흔쾌히 양해가 될 겁니다
자주 들어 알고 있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는
톨스토이의 성찰을 설명하는 데에
사랑의 유무 외에
뭐가 또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 이 글의 첫머리,
'당신이 사랑해도 좋은 사람이
도대체 이 세상에 있을까?'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또 하나의 답은,
'내 눈앞에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충분하다'일 겁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대립 유전자가 많을수록
무지의 새로운 질병 등에 대한 면역,
또는 저항력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므로,
종족 보존의 욕구에 따른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는 후손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