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편의점
'인간은 스스로 만든
상징의 거미줄에 매달린 동물'이라는
클리퍼드 기어츠의 말은, 그가
상징인류학자라는 것을 무시하면
여러 해석이 가능할 겁니다
여기서 상징이라면
성공, 좌절, 행복, 불행 등의
각자 나름의 구상도 있겠는데,
내게는, 앙갚음과 더불어
'명색名色'의 모양입니다
"명색이 인간인데, 하는 짓은!"
보통 이렇게 쓰고,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일을 꾀할 때 내세우는
구실이나 이유 또는 이름'으로
'명목'과 비슷한 말로 풀이합니다
하지만, 불교에서의 명색은,
'이름, 정신, 상징'을 뜻하는 명名과
'겉꼴, 물질, 실제'를 뜻하는 색色으로,
마음과 몸을 가진 인간이나,
의인화한 모든 객체를 뜻합니다
당신을 염두에 두고 쓰면,
마주 오는 걸음걸이에서
당신임을 인지하는 것이 名,
사랑스러움을 보는 것이 色'입니다
분노를 내려놓으라는
법정의 말을 머리에 새기지만
나는 늘 앙갚음을 꿈꿉니다
기어츠의 '상징'에 매달리는 거지요
그런 내가 앙갚음을 하려면
거기 매달린 나와 대상, 모두
불쌍해 보이곤 했기 때문에
실제 실행한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마 사춘기에 들어선
중1 무렵에 읽은
미시마 유키오의 수필집,
<부도덕교육강좌> 가운데,
"남을 괴롭히고 죽어라"라는 꼭지에
심취했던 덕분인가 싶습니다만,
위의 용어로 풀면,
명名은 분명한데
색色이 불명한 겁니다
앙갚음을 한다는 건
색을 보여주는 거니까요
그래서, 지금까지
내 속의 화를 놓아주기 위해
내가 하는 짓은, 벌어진 일은
방관, '무시'하는 거였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그가 나를 버릴 때,
그걸 무시할 만큼
당신은 착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는 내게서 색을 앗으며
그 자신의 색도 바꿉니다
그와 나 사이에 남는 건
내가 그에게 칠했던 색뿐이지요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내가 필히 지워야 할 색입니다
내가 칠했던 색 그대로
그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은,
함부로 취급받아도 좋다는
자기 비하로 보이니까
선택지에선 아예 지웁니다
그렇다면, 내게 무시라는 건,
지난 당신을 되새기는 것이기도 하며
명과 색의 부조화를 깨는
또 다른 색을 덧칠하는 것입니다
따져보면, 명名이 색色보다
더 우리를 괴롭힙니다
우리가 괴롭다는 것은 대개
그 명名을 앓는 겁입니다
색은 시간에 따라 바래지만,
명을 무시하고 외면하면
그걸 마주 대하는 때보다
그 아픔이 오래갑니다
그래서 회의가 있겠지만
앙갚음, 복수는 해야 합니다
당신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알다시피, 어려운 영단어는
지나치는 게 아니라 자꾸 써서
잊지 않는 게 복수이지요
기억해야 무시할 수 있으니까요
나를 버리고 가는 세월에의 복수는
세월을 무시하면서 사는 겁니다
그렇게, 당신을 버린 그 역시
잊으려는 게 아니라
오래 기억하려는 겁니다
그를 기억으로 남기는 것,
그게 진정한 앙갚음일 겁니다
어떻게 그게 앙갚음이 될까
마리 로랑생에게는
<잊혀진 여인>이
가장 불쌍한 여인이고,
당신의 삶에는
"과거인過去人"이
가장 보잘 것없습니다
무시와 기억의 시제는
늘 과거일 수밖에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