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편의점
사람만 예쁘고, 사람만 외롭다
오월 초순 어느 날
담장 옆, 장미가 핍니다
흐드러진 건 아니고,
그루마다 성마른 놈이
기세를 부리는 건지,
제 키 자랑하듯
고개를 길게 뺀
한 송이, 장미입니다
도시에 핀 탓인지*
꽃 향기가 없습니다
하루를 더해 가며 그루마다
흐드러지게 폈는데,
꽃 향기는 여전히 없습니다
왜 폈는지 모를 터입니다
모양이 장미인 장미입니다
아, 모양이 장미입니다
사람만 예쁘고,
사람만 외로운 것은
예쁘다와 외롭다는 말을
알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의미를 모르면
그대는 예쁠 수 없으며
외로울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대에게 어울리는 말만
알아두면, 그것도 괜찮을 겁니다
우리를 사랑하게 하는 것은,
외로움이나 예쁨이 아니라,
사랑일 겁니다
아무래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 덕분에 그 착각에서 벗어난 뒤
그를 사랑한 건지, 아니면
나를 사랑한 건지
깨닫는 경우가 많은 거지요
사랑해서 예뻐지는 건 쉽지만,
예뻐서 사랑하는 건 어렵습니다
그저 예쁠 건 없는 겁니다
타인에게뿐 아니라
그대 자신에게도 같습니다
예쁠 게 있나요
그대를 예쁘게 볼 그런 사람이
한 사람 있으면 될 겁니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참 에쁨을 보는 건
자의적 도취가 아니라 그대를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볼
누군가가 그렇다고 할 때,
그대가 그대를 보기에
예쁜 것보다 훨씬 예쁠 겁니다
그리고 그게 예쁜 겁니다
힘이 더 세다는 것이지요
그대가 그대에게 예쁜 건
향기 없는 장미와 같습니다
참 예쁨은 개발되거나,
계발되는 게 아닐 겁니다
그대를 그대처럼 살다 보니,
그대에게 붙게 된 무늬가 있고
그 무늬에서 향기를 맡는,
마치,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가
가장 먼저 하게 되는 것,
자신의 생명을 맡길 수 있는
요람으로 받아들이는 각인말입니다
여기서, 삶의
현재성現在性이라는 걸 되새길만한데,
우리는 항상, 과거의 그대에게가 아니라
현재의 그대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겁니다
그가 나를 사랑하는 건
현재의 그대일 겁니다
과거의 그대는 그가 모르는 사람이고
사랑에 빠지게 한 건
현재의 그대일 테니까요
여든 된 노파가
예순 해를 같이 늙어온
초라한 사내에게서 여전히
스물두 살 청년의 잘 생김을 보거나,
그 역으로, 늙은 사내가
여든 된 늙은 아내의 쭈글 한 모습을 보며
열여덟 떼의 예쁨을 보고 있는 건
아내의 마음 귀에 듣기 좋으라고
괜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닌 겁니다
사내와 아내는 각인된 현재를,
진정, 그렇게 보는 겁니다
우리가 '원래'라는 것이나,
처음이라는 것,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에
애착을 갖는 것은
두세 살짜리 아이, 아니면,
서른두 살 청년의 애착과
전혀 다르지 않을 겁니다
사랑을 버릴 때,
우리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각인된 그 모습이 사라진
생경한 현재의 그를
'그때의 그'로 추억하기 어렵다는
안타까움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예쁘면 품고,
아니면 버립니다
요즘, 조금 이른 철이어서
수박이든, 참외든,
맛이 없는 건 버립니다
잠깐, 외로움을 잊었다면,
그마저도 즐긴 것으로 하지요
*향기가 없는 장미는 인간의 욕심으로 생겨난 품종이다.
http://www.popsci.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