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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May 17. 2023

사람만 예쁘고, 사람만 외롭다

생각편의점

사람만 예쁘고, 사람만 외롭다





오월 초순 어느 날

담장 옆, 장미가 핍니다


흐드러진 건 아니고,

그루마다 성마른 놈이

기세를 부리는 건지,

제 키 자랑하듯

고개를 길게 뺀 

한 송이, 장미입니다

도시에 핀 탓인지*

꽃 향기가 없습니다

하루를 더해 가며 그루마다

흐드러지게 폈는데, 

꽃 향기는 여전히 없습니다 

왜 폈는지 모를 터입니다

모양이 장미인 장미입니다

아, 모양이 장미입니다


사람만 예쁘고,

사람만 외로운 것은

예쁘다와 외롭다는 말을

알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의미를 모르면

그대는 예쁠 수 없으며

외로울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대에게 어울리는 말만

알아두면, 그것도 괜찮을 겁니다




우리를 사랑하게 하는 것은, 

외로움이나 예쁨이 아니라, 

사랑일 겁니다

아무래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 덕분에 그 착각에서 벗어난 뒤

그를 사랑한 건지, 아니면

나를 사랑한 건지

깨닫는 경우가 많은 거지요



사랑해서 예뻐지는 건 쉽지만,

예뻐서 사랑하는 건 어렵습니다

그저 예쁠 건 없는 겁니다

타인에게뿐 아니라 

그대 자신에게도 같습니다

예쁠 게 있나요

그대를 예쁘게 볼 그런 사람이 

한 사람 있으면 될 겁니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참 에쁨을 보는 건

자의적 도취가 아니라 그대를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볼 

누군가가 그렇다고 할 때,

그대가 그대를 보기에

예쁜 것보다 훨씬 예쁠 겁니다

그리고 그게 예쁜 겁니다

힘이 더 세다는 것이지요


그대가 그대에게 예쁜 건

향기 없는 장미와 같습니다


참 예쁨은 개발되거나, 

계발되는 게 아닐 겁니다

그대를 그대처럼 살다 보니, 

그대에게 붙게 된 무늬가 있고

그 무늬에서 향기를 맡는,

마치,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가

가장 먼저 하게 되는 것,

자신의 생명을 맡길 수 있는

요람으로 받아들이는 각인말입니다


여기서, 삶의 

현재성現在性이라는 걸 되새길만한데,

우리는 항상, 과거의 그대에게가 아니라

현재의 그대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겁니다


그가 나를 사랑하는 건

현재의 그대일 겁니다

과거의 그대는 그가 모르는 사람이고

사랑에 빠지게 한 건

현재의 그대일 테니까요


여든 된 노파가

예순 해를 같이 늙어온 

초라한 사내에게서 여전히 

스물두 살 청년의 잘 생김을 보거나,

그 역으로, 늙은 사내가

여든 된 늙은 아내의 쭈글 한 모습을 보며

열여덟 떼의 예쁨을 보고 있는 건

아내의 마음 귀에 듣기 좋으라고

괜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닌 겁니다 

사내와 아내는 각인된 현재를, 

진정, 그렇게 보는 겁니다


우리가 '원래'라는 것이나, 

처음이라는 것,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에

애착을 갖는 것은

두세 살짜리 아이, 아니면,

서른두 살 청년의 애착과

전혀 다르지 않을 겁니다


사랑을 버릴 때,

우리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각인된 그 모습이 사라진

생경한 현재의 그를

 '그때의 그'로 추억하기 어렵다는

안타까움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예쁘면 품고,

아니면 버립니다

요즘, 조금 이른 철이어서

수박이든, 참외든, 

맛이 없는 건 버립니다


잠깐, 외로움을 잊었다면,

그마저도 즐긴 것으로 하지요





*향기가 없는 장미는 인간의 욕심으로 생겨난 품종이다.

 http://www.popsci.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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