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자랑
혹시 그대가
사랑을 감출 생각이라곤
전혀 없는
나와 다르다면,
그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못해,
잠 못 드는 어느 날
"너를 사랑해!"
그를 염두에 두고 밤하늘에,
외쳐 보면 쉽게 알 겁니다
그 순간,
어쩐지 자신이 중대한 일을
해낸 것 같은 착각과 함께,
"사랑해"라는 그 말속의 '너'는
왠지 그대에게
더욱 특별해진 듯하고
그때 보인 하늘이
어제의 밤하늘과는 확실히
달라진 듯 느낄 겁니다
사랑한다는 말이
여늬 말과는 다른 거지요
"성공할 거야."
"잘 살 거야."
이런 말에는 패기라든지
북돋우는 힘이 있기는 하지만,
가슴속에 똬리를 튼
미래의 막연함과,
미래를 기약하긴 해도
불확실성을 감추려는
자기기만을 무시할 수 없어서,
허공에 괜한 주먹질을 한
기분을 버리기 어렵습니다
그와 달리, 사랑한다는 것에는
시제가 현재밖에 없어서
즉각적인 성취감을
느끼게 되기 마련입니다
의미를 잃지 않을 뿐 아니라
시제를 가진 다른 말과 달리
사랑이 오직 현재인 거지요
"사랑했다"
"사랑할 거야"
"사랑일 거야"
이 말들엔 사랑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시제를 가지면,
사랑하는 즐거움을 잃은 것이거나
잃은 뒤의 회한이게 됩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말 그대로의 의미로 쓰는 한
우리가 하는 말 가운데
가장 적나라하고 깔끔하며
겸손하지 않은 말일 겁니다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의
김어준뿐 아니라, 사랑도
겸손하기를 힘들어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그렇게
자기 말에 자신도 모르게
취하기 쉬운 인간으로서
우리가 가진 말 가운데
가장 힘센 말이기도 합니다
아니면 아니라고,
맞다면 그렇다고 해야 할,
그 '참'을 억눌러야 할
이유를 모르겠는 겁니다
그래서, 사랑은
뜨겁기도 하고
한 겨울 칼바람처럼
무정하기도 한 겁니다
타자를 사랑하지만
그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건
사랑을 말한 나 자신입니다
사랑받아서 죽은 이는 없어도
사랑한 까닭에 죽은 이들이
훨씬 더 많은 이유일 겁니다
그래서 말인데, 어느 날 그가
그대의 의미가 되어갈 때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 줘도 좋아, "
라고 할 때까지는 그가 그 말을
내뱉지 않도록 신경 써줘야 할 겁니다
그가 그 말을 해도 좋을 때는,
그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느낄 때일 겁니다
그래서 내가 그를 사랑하면 좋지만,
사랑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사랑일 때이기도 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의 힘을
알고 있는 우리는 아무나에게나
우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게끔 해서는 곤란합니다
그 말을 입에 담은 '나'도 바뀌니까요
거꾸로, 그대의 마음이
뭔지 잘 모르게 될 때는,
"아, 이게 사랑인가, " 싶어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해 봐야,
그의 마음을 알게 될 겁니다
갑자기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 말보다 더 나은 말을
알지 못하고, 달리
새로운 말을 만들 재주가 없어서
그 자신도 달리 방법이 없고
그에게 '특별한' 느낌을 주고 싶어
하게 되는 말이 사랑인데,
그게 너무 평번한 말이라서
안타까움을 느끼게 될 겁니다
그게 사랑의 힘자랑이지요
(그에게는 사랑을 말 못 하게 하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을 때 한다면,
"그건 불공평한 게 아니냐?"
묻고 싶을지 모르겠는데,
나와 취향이 다를 수도 있는
그가 묻는다면, 따져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내가 나 자신에게
굳이 형평의 여부를 따집니까?
그것만큼 미련한 일은 없습니다
내가 내게 이기적인 걸 어쩝니까?)
여하튼 그 사랑이 진짜라면,
그걸 이기지도 못하지만
그저 못 이기는 척, 져주는 게
사랑과 맞닥뜨린
사람이 할 일일 겁니다
겸손하면, 거의 틀림없이
사랑은 아예 없는 것과
다르지 않게 되기 쉽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나라가
하 수상해도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