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람
수치(羞恥)를 아는 평범함이
서러운 계절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대개의 예술가와
연예인은 물론, 우리도
사랑받으려고 삽니다
(많은 노년들의 뒷모습이
초라해 보이는 건
사랑받기를 체념함으로써
수치에 둔감해진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가운데, 노골적으로 모두의
사랑을 받으려는 건
남녀를 불문한
성노동자의 일이라고
언젠가 쓴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으로,
그것이 기술이든, 지식이든
그저 맨몸이든 간에
업을 삼고 그것을 좀 더
자신에게 맞춰가거나
자신을 그것에 맞추며
'밥줄'을 지탱하고 있는데,
업무의 성격 상 불특정 다수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일일 때,
오직 한 사람에의 애정을
갈구하는 것은 업무 태만일 겁니다
모두의 사랑을 받으려는 것이,
오히려 삶을 성실하게 꾸리는 이가
그 일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올바른 태도일 것이고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겠지요
그런 태도와 자긍심이 없다면
그 일에 자격이 없거나
어울리지 않는 직업을 가진 겁니다
오래전 사람이었던 공자는
'선한 사람으로서
모든 이의 칭찬을 받는 것은,
선한 이의 칭찬을 받고
악한 이에게서
욕을 먹는 것만 못하다*'고 했답니다
그가 한 말의 속뜻을
헤아리지는 못하겠습니다만,
그 말의 행간을 나름대로 읽으면,
선악의 경계 없이
자신의 개성을 감추는 것이
선함이라 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악이 악을 자랑할 때,
선이란
선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선악을 구별하는 것일 겁니다
늘 사랑을 말하고 있는
나 자신의 감각으로 다시 쓰라면,
모두의 사랑을 받으려고
꿈도 꿔본 적 없는 사람이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쓰겠습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면
모두의 사랑을 받지 못하냐 하면,
그건 아닐 겁니다
부러워할 수는 있겠으나
그를 비난하지는 않을 겁니다
"아, 쟤 미쳤나 봐"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타인들의 사랑을 보며 느끼는
우리의 위화감 안에
혐오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경애를 느끼는 건
그들의 모습이 언젠가는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일반화 능력 덕분일 겁니다
더는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패배감은, 이기적이랄 수 있습니다
받지 못할 것 같으면
주기라도 해야 할 것 같지요
"내가 너를 사랑한다면, 믿겠어?"
이 두려움이 제법 큽니다
떠나 버린 사랑과
보낼 수 없는 사랑 가운데
떠난 사랑을 되돌리기보다
보낼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기어이,
기어이 자신을 망치고 맙니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너'의 문제가 아니라
늘 '내' 문제로 남습니다
수치(羞恥)를 아는 평범함이
미련해 보이는
한심한 계절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의 연기로 인해
위로를 받았던 수많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좀 더 뻔뻔할 수 없었던 그를,
그리고,
가버린 그와 그가 남긴 이의
서로 다른 안녕을 기원합니다
(2023.12.27 배우 이선균 님을 보냅니다)
* 자공: 마을 사람이 모두 좋아하면 어떤가요?(子貢 問曰 鄕人 皆好之 何如?)
공자: 모자라다.(子曰 未可也)
자공: 마을 사람이 모두 싫어하면 어떤가요?(鄕人 皆惡之 何如?)
공자: 모자라다. 마을의 선한 사람이 그를 좋아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이 그를 미워함만 못하다.
(子曰 未可也. 不如 鄕人之善者 好之 其不善者 惡之)
- 선한 사람이란 선한 자들에게 칭찬을 받고 악한 자들에게 욕을 먹는 사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