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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Dec 29. 2023

선한 사람

생각편의점

선한 사람




수치(羞恥)를 아는 평범함이

서러운 계절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대개의 예술가와

연예인은 물론, 우리도

사랑받으려고 삽니다


(많은 노년들의 뒷모습이

초라해 보이는 건

사랑받기를 체념함으로써

수치에 둔감해진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가운데, 노골적으로 모두의

사랑을 받으려는 건

남녀를 불문한

성노동자의 일이라고

언젠가 쓴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으로,

그것이 기술이든, 지식이든

그저 맨몸이든 간에

업을 삼고 그것을 좀 더

자신에게 맞춰가거나

자신을 그것에 맞추며

'밥줄'을 지탱하고 있는데,

업무의 성격 상 불특정 다수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일일 때,

오직 한 사람에의 애정을

갈구하는 것은 업무 태만일 겁니다


모두의 사랑을 받으려는 것이,

오히려 삶을 성실하게 꾸리는 이가

그 일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올바른 태도일 것이고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겠지요


그런 태도와 자긍심이 없다면

그 일에 자격이 없거나

어울리지 않는 직업을 가진 겁니다




오래전 사람이었던 공자는

'선한 사람으로서

모든 이의 칭찬을 받는 것은,

선한 이의 칭찬을 받고

악한 이에게서

욕을 먹는 것만 못하다*'고 했답니다


그가 한 말의 속뜻을

헤아리지는 못하겠습니다만,

그 말의 행간을 나름대로 읽으면,

선악의 경계 없이

자신의 개성을 감추는 것이

선함이라 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악이 악을 자랑할 때,

선이란

선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선악을 구별하는 것일 겁니다


늘 사랑을 말하고 있는

나 자신의 감각으로 다시 쓰라면,

모두의 사랑을 받으려고

꿈도 꿔본 적 없는 사람이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쓰겠습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면

모두의 사랑을 받지 못하냐 하면,

그건 아닐 겁니다

부러워할 수는 있겠으나

그를 비난하지는 않을 겁니다


"아, 쟤 미쳤나 봐"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타인들의 사랑을 보며 느끼는

우리의 위화감 안에

혐오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경애를 느끼는 건

그들의 모습이 언젠가는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일반화 능력 덕분일 겁니다




더는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패배감은, 이기적이랄 수 있습니다

받지 못할 것 같으면 

주기라도 해야 할 것 같지요


"내가 너를 사랑한다면, 믿겠어?"

이 두려움이 제법 큽니다


떠나 버린 사랑과

보낼 수 없는 사랑 가운데

떠난 사랑을 되돌리기보다

보낼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기어이,

기어이 자신을 망치고 맙니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너'의 문제가 아니라

늘 '내' 문제로 남습니다




수치(羞恥)를 아는 평범함이

미련해 보이는

한심한 계절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의 연기로 인해

위로를 받았던 수많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좀 더 뻔뻔할 수 없었던 그를, 

그리고,

가버린 그와 그가 남긴 이의

서로 다른 안녕을 기원합니다


(2023.12.27 배우 이선균 님을 보냅니다)






* 자공: 마을 사람이 모두 좋아하면 어떤가요?(子貢 問曰 鄕人 皆好之 何如?)

  공자: 모자라다.(子曰 未可也)

  자공: 마을 사람이 모두 싫어하면 어떤가요?(鄕人 皆惡之 何如?)

  공자: 모자라다. 마을의 선한 사람이 그를 좋아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이 그를 미워함만 못하다.

          (子曰 未可也. 不如 鄕人之善者 好之 其不善者 惡之)      

     - 선한 사람이란 선한 자들에게 칭찬을 받고 악한 자들에게 욕을 먹는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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