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뉘 Feb 28. 2024

왜 하필 여자를

생각편의점

왜 하필 여자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 또는 남자를 사랑하면

흔히 사랑은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남자나 여자를 사랑하도록 되어 있는

우리 자신의 본태 덕분인데,

남자, 또는 여자를 사랑하는 것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게 생각처럼

그다지 쉽지가 않습니다


대개 아는 것이지만,

우리가 '보다 나은 나'가 되려는 것은

궁극적으로 내가

어떤 사람과 사느냐는 문제

수렴된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랑에 나를 앓는 이유가

사람을 사랑하지 않은 때문이라는 겁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든

나는 당신을 처음 사랑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어떤 사람이었든

당신은 나와 처음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

특별한 사람이 되었을 때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사랑엔 중고가 없으니까요


사랑을 배웠다고 할 때는

사랑을 빙자한

사람 다루는 걸 배운 겁니다

사랑을 안다고

배운 사랑의 쓸모를

생각하고 있는 동안은

사랑에 빠지지 못할 겁니다

교제에 머물 테지요


그러다가 '그' 사람을 만나면

쓸모없는 지나간 사랑을

미필적 장식으로 여기게 될 겁니다




(이걸 말해야 하나 싶지만, 현대 사회의 성적 터부나 혐오, 개인의 성적 정체성은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고 있는 것이라면, 모두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태어난 대로 사는 것을 태어난 대로 살지 말라고 하는 건 인간사회뿐입니다.

성적 취향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우연히 사람으로 태어난 바에야 자신의 삶이 같잖다고 볼멘소리를 해도 좋고, 할 수 있다면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하고, 거꾸로, 사람으로 태어난 그 우연이 살아가는 단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하는 걸 겁니다.) 




이미 말했지만, 사람을 사랑하는

이성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성(Sex)을 사랑하도록 태어났습니다

그런 우리가 '사람'을

사랑한다는 어떤 걸까요


우생학은 그 사랑을 알고 있습니다

유전자가 혈육에서 느끼는 애착을

이미 본능으로 묶어 놓은 겁니다

 

처음 본 두 사람이 아무런 맥락 없이

서로 매력을 느낄 경우,

그 둘의 유전자를 분석해 보면, 쉽게 말해

한쪽이 요(凹)이면, 다른 쪽이 철(凸)이고

한쪽이 철이면, 다른 쪽이 요를 보이는

서로 보완하는 형질의 유전자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매력이란 것이 일종의

유전자의 회유로 보이는 이유입니다


그런 일은 아주 드물지만

서로 완벽하게 보완될 경우가

흔히 말하는 천생연분이겠지요

서로의 유전자가 보강되어

두 사람의 신체 형질보다 건강한,

월등한 인간을

후세에 남길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우리는 끌리는 사람에게

집중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사랑에 빠지는 데에

그의 성이 문제는 아닙니다


여자를 사랑하는 것보다는, 또는

남자를 사랑하는 것보다는

두 팔을 벌려 포옹했는데

하필이면 그가 여자이거나,

아니면 하필 그가 남자라면

가슴 앓을 일이 드물 겁니다


그렇다면, 남자나 여자가 아닌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이런 겁니다


사랑을 아이처럼 하는 겁니다

아니면, 아이를 품에 안은

아빠처럼, 엄마처럼 사랑하는 겁니다

그들에게는 성의 구별이 없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받습니다


사랑은 어른의 것이 아니라고

「혹은누군가를위하여 」에도 썼지만

사랑은 아이처럼 해야 할 겁니다


사랑한다는 것이 낭만이 되어버린 요즘,

그럴 수 있는 '나'를 가진 이가

몇이나 있을지 궁금하긴 합니다만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받고 싶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