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편의점
당신에 대한 사소한 호의를
대화에 담고자 할 때
마음의 걸림 없이
사랑한다고 말해줘도
상처가 되지 않는
삶나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대체로 여섯 살 이전이거나,
일흔여섯을 넘었다면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둘을 기준으로 본 이유는
사랑한다는 것을 잘 모르거나,
사랑한다는 것을 믿지 않을
나이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다섯 살로 돌아가기는 글렀고,
사랑을 즐기는 것이 언제나
즉물적일 필요는 없을 테니까
일흔여섯이 되고,
그 나이를 넘어도, 나는
사랑을 믿을 생각이긴 합니다
그 기저에 성욕이 깔렸다 해도
우리가 사랑을 입에 담을 때는
감정적 응석을 담으려 하는데,
그 응석은 대개 신선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어른이 하는 것이 아니라
치기를 버리지 못하는
아이가 하는 것이니까요
여기서,
'치기를 버리지 못한'이 아니라
'치기를 저리지 못하는'으로
우리말의 진행형으로 쓴 것은,
그 시기나 상황을 특정할 수 없어
나이를 말하기가 어렵고
치기를 잃으면 어느 정도 뻔뻔해져서
주저 없이 성욕을
사랑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나이 들어도 왠지
치기를 잃지 못하고 있는 내가
사랑한다고 들려주고 싶은
에마 톰슨은 지금 예순다섯입니다
세월을 먹을 수밖에 없고,
스크린 속에서의 미모는 모자라도
거기 구애되지 않는
매력을 가진 덕분이기도 할 겁니다
함부로 사랑한다고 말하면
뭔가, 말한 사람이
뻘쭘해질 수 있기는 하겠지만
사랑받아도 좋은 나이라고 봅니다
가끔 그가 뜬금없이 생각이 나면
사랑한다고 말해도 좋다 싶은 거지요
그는 상대적으로
어떤 매체든, 팬에게서든
예쁘다거나 아름답다는,
쓸데없는 말을 듣지 못하지만,
그를 보게 된 것은
'남아 있는 나날들'로
개봉된 영화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에마를
사랑하는 건 아니지요
그때의, 그 영화에서의
에마 톰슨이 연기한
<샐리 켄튼>을 사랑하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치기를 아직
유지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스크린이 있어야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그이므로,
집사장 제임스 스티븐스에 대한 사랑을
해석한 에마의 샐리와
에마 자신에게 고맙기도 합니다
에마 자신이든, 샐리이든
누군가에게 사랑을 만들어 주는 건,
매일 치열하게 다투어야 하는 삶에서
마음을 풍성하게 만드는
또 다른 보시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건
내게 자연스럽습니다
지나가는 길에 한 마디 더하면,
사랑은 이루는 것이나 집착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하는' 것이라는 걸
영화는(물론 소설도) 생각하게 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그에게
그에 대한 고마움을 말하거나
느낀 적이 있는지요?
사랑하지 않아도 좋은 그를
나로 하여금 사랑하게 해서 -
그걸 창조라고 봅니다 -
흔한 일상도 사랑하게 만드는 그는
내가 그를 사랑하는 동안이나마,
영원하지는 않더라도
나의 신에 가깝다고 봅니다
당신을 내가 사랑할 때
당신의 과거나, 전혀
알 수 없는 미래의 당신 역시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나는 오직 당신의
현재를 사랑하는 겁니다
나는 현재의 당신을
당신의 양해도 없이
내 마음대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말했듯이
도저히 사랑할 수 없게 되면
당신을 함부로 버릴 겁니다
게다가, 내 사랑이 당신에게
즐거우리라 보장할 수도 없습니다
그건 당신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즐겁지 않다면,
당신을 함부로 버릴 수 있듯이
나는 주저 없이, 아쉬움 없이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겁니다
그때 혹시 내 눈매가 젖어와도
당신이 걱정해야 건 아닙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만으로
당신을 에마 톰슨의
샐리처럼 현실을 받아들일 겁니다
사랑은, 다섯 살 아이를
사랑할 때처럼 합니다
당신이 내 품에 들어오면
아기처럼 마주 품고, 내 품을 벗어나면
누구든 당신을 사랑할 아이 그대로
기꺼이 팔을 풀 겁니다
당신이 내게 투정할 게 있다면,
"아무리 그래도,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 할 수 없는 건
당신의 사랑이 모자라기 때문이야"라고
나를 비난하는 것, 그 정도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 영수증을
당신에게서 받은 거라고 봅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당신은
이미 의식하고 있겠지만,
당장은 아니어도, 당신이 곧 나를
사랑할 것 같다는 응석*으로 들리니까요
*응석은 그 응석을 받을 사람에 대한 어느 정도의 신뢰 없이는 보여주기 어렵습니다
내란성 불면증을 야기한 '그'가 자라면서 돈과 지위보다 응석을 제대로 배웠다면, 보통사람들의 고생이 훨씬 줄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