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편의점
우리는 화수분도 아닌 사랑을
아는 모두에게 줄 수 있도록
진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선지, 아는 인간을 사랑하고
아는 그를 미워하게 됩니다
모르는 인간을 미워하는 건
아는 인간을 미워하는 것에 견줘
엄청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산술 계산으로 봐도
우리는 동시대를 사는 인류의 과반
훨씬 너머까지 그들을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모두를 사랑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하지만, 나는 사랑만큼 미움도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사랑과 미움의 어느 한쪽에
무게를 더 두지 않습니다
그래도 되도록이면
사랑하게 되기를 바라기는 하는데,
미워하는 것보다는 편한 까닭입니다
(그럼에도 내가
요즘 어렵고, 괴로운 건
연일 뉴스에 뜨는,
알 만큼은 안다고 여겼던
우리 사회의, 헌재 판사를 포함,
나라 걱정하게 만드는
'만들어진 엘리트'들의 민낯을
전혀 마음의 괴로움 없이
비웃을 수 있게 됐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것은 '나'라는 존재가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이어서
다른 하나인 '너'의 속에
'나'를 담아두는 건
<어린 왕자>의 말처럼
기적이 맞을 겁니다
<세상이 한 사람으로 축약되고,
그 한 사람이 신으로까지 확장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 빅토르 위고...
대체로 나는,
사랑이 성욕을 기반으로
이뤄진다는 쇼펜하우어의 주장에
동의하기는 하지만,
이타성을 일깨우는 면에서
성욕과 사랑은 다르다고 봅니다
이 말의 적확성을 의심한다면,
당신은 사랑이란 탈을 쓴
성욕에 시달렸을 뿐 그저
사랑 근처에서 머뭇거린 채,
사랑은 경험하지 못한 겁니다
그렇다고, 한 사람을 꾸준히
사랑해야 한다는 건
유쾌한 생각이 아닙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성찰이 있습니다
<일관성은 상상력이 없는 이들의
최후의 피난처다>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우리의 사랑을 가끔
외골수로 빠지게도 할 겁니다
그러나, 상상력이 넉넉한 그라면,
당신을 하나의 범주에 잡아두고
일관성을 요구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변성 덕분에
사랑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누구든
사랑을 할 수 있는 내가,
어쩌다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당신을 사랑한다는,
당신에 대한 사랑의 변별성이
당신을 즐겁게 하는 건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이 변하고,
변해야 하는 것이어서
사랑이 사랑다워집니다
아니면, 사랑이
감정의 무덤이 되는 거지요
누구나 사랑할 수 있어야 사랑이고
그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있어야
맛을 제대로 내는 '너와 나'의
사랑이랄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는 당신 사랑이 '찐'이라고
함부로 주장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너'로 인해 아프지 않으려면,
당신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것들,
손톱깎이나 바람, 하늘 등에
마음을 주는 게 나을 겁니다
다만, 그럴 경우 오늘도
격렬히 사랑해야 할
달콤한 절실함을
느끼지 못하게 될 텐데,
훗날 당신의 삶을 쓸모없었다
반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입에 풀칠하려고 뛰는 것도 어려운데,
가끔 성욕이나 해소하면 되지,
사랑이 뭐냐는, 자조적 사고도 합니다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그 사고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태어났으니까 산다는,
자신조차 시간의 소모품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모품이 뭐, 어떠냐 싶지만, 결국 당신은
시간의 소모품조차 되지 못할 겁니다
왜냐하면, 소모품으로
살자고 하는 순간 곧
쓸모없는 쓰레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멜빈이 캐럴에게 전하는 사랑의 대사,
나는 이걸 고백으로는
거의 완벽하다고 여기는데,
자기 성찰, 어른의 응석,
인정과 향상 욕구 등
사랑이 당신에게 하는 일을
한 마디로 전하고 있습니다
어떻든 우리 가운데
사랑할 준비가 된 이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평범하고, 찌질한 삶을 살다가
사랑에 빠진 후에 당신 자신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그도 즐겨야 할 테니까요
* 흔한 착각 _<사랑에 중고는 없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