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편의점
기억이나 추억은, 자주
돌이켜 생각하지는 않을지언정,
삶에서 지울 수가 없습니다
잊었다고 하는 말 자체가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고 보니
살아 있는 한
달리 없앨 방법이 없지요
그런 의미에서 헤어진다는 건,
말 그대로의 의미라기보다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 한
같은 공간과 시간에서 더 이상은
너와 나로서의 기억이나 추억을
쌓고 싶지 않다는
적극적 의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끝낸다고 말하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가 말하는 헤어짐은
쉬이 볼 수 없는, 또는
'너'를 마구 보지 않아도 좋은
세상 어딘가에 살겠다는 겁니다
여기서, 특별한 경우라거나,
매듭이라는 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그러니까 굳이 보려고 하느니,
감정의 허무한 소모 없이
곁에 살아가야 하는 게
흔한 만남에 대한
흔한 헤어짐인 것이지요
만남이 헤어짐의 상대어이지만
어떤 만남이 있다면 사실,
헤어짐은 심정적 수사에 불과합니다
살아서는 그 관계를
매듭지을 수 없으니까요
이 생각을 생각편의점의
매대에 올려놓는 이유는,
얼마 전 삶을 접음과 동시에
세상과의 관계를 매듭지은
내 주위에 살던 서른두 살의
어떤 젊음을 비난하려는 겁니다
'흔한 헤어짐에 사는 게 그런 거지,
그게 뭔 대단한 일인가' 싶었을
그의 뒤에 남겨진 이들이
아직 슬픔에 잠겨있다는 걸 알고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지요
물론, 남은 이들이 없다 해도
자신의 삶에도 불성실했던 그는
누구에게든 비난받아야 합니다
그의 젊음에 대한 연민 때문에
'지못미*'를 앓는 이도 있겠는데,
그것은 죽은 이와의 연대가 없는
자기 위로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지못미를 앓는 그도
죽은 이에게 버림받았으니까요
우리에게 만남이란
이 세상에 없던 것이
느닷없이 보이는 것으로,
우연이 필수입니다
수시로 마주치고 눈에 익었던
그저 사소한 것들, 혹은 그의 몸짓
아니면 아는 얼굴에서 괜히
처음 보는 듯한 눈빛의 발견,
어쩌다 등뒤에 뭔가가 있음을
느끼게 되는 우연, 그
모든 느낌과 움직임은
만남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집밖으로 나갈 때는
늘 그 우연을 즐길 준비를 하고
나가야 할 이유가 설명되지요
마침내 우연을 필연이라고
우기고 싶어 하는 당신이 되면
우리는 당신이 '사랑에 빠졌다'라고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논리를 끌어다가
왜 '그와 당신'이 만나야 했는지
신박한 논리를 가슴으로 쓰게 될 테니까요
우연을 필연으로 착각하는
당신이 겪는
만남과 헤어짐에 따른 희비는
순전히 당신 탓입니다
대개 버림받았다고 하는데,
그는 당신을 버릴 수 없습니다
당신은 그의 소유가 아니잖아요
또한 그 헤어짐으로 인해
그가 얻는 것은
당신과의 관계를 우연으로 치고
당신을 만나지 않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다시 말해,
살아서는 당신을 버릴 수 없기에
당신을 만나지 않으면서
당신의 주위에, 아니면
이 세상 어딘가에서
그 나름의 삶을 살겠다는 것이
당신에게 그렇게
억울하고 애달픈 일인가요
그가 제 삶을 살아가는 게,
당신 자신을 죽일 일이냐는 겁니다
당신은 그를 모를 때도
아쉬운 것 없이 잘 살았거든요
혹시, 사랑에 빠지면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 할 텐데,
솔직히 말해서, 그건
그의 양심에 기대어 그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내려는
한심하면서도 이기적인
집착이 분명하지 않나요?
그건 사랑이 아닐 겁니다
심리적 폭력에 가깝지요
자신도 사랑하지 않으면서
그를 사랑하기보다는,
옭아매려는 당신은 치졸합니다
한편, 남겨지는 이들을 생각하면,
당신은 언제 죽어도 좋지만
아무 이유 없이, 또는 심심해서
웃으면서 삶을 접는 게 나을 겁니다
당신을 응원한 이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오히려
비난하는 거냐는 겁니다
그렇게 가면, 어떻게
'잘 가라고 하냐'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