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편의점
사랑하는 것에는 중고가 없어서
같은 사랑을 다시 할 수 없지만,
사랑에 관해서는 얼마든지
다시 쓸 수 있을 겁니다
사랑은 늘 현재이고 지나간 것은
반추밖에 없는 과거에 있으니까요
우리는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고
어제와는 다른 사랑을 합니다
그게, 우리가 사랑하게 되는 이유이고
사랑하지 않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내가 사랑한다 할 때의 사랑에는
그 말을 당신에게 들려주는
즐거움이 함께하는데, 거기엔
식물성과 동물성이 섞여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식물성과
당신의 동물성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대체로 착한 사랑의 시작은
계획 없이 자라는 식물성이며,
거의 동물성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문명화를 이뤄오면서 우리는
우리의 동물성을 감추려 노력해 왔고,
성욕을 올곧이 사랑이랄 수 없다는 것과
그걸 함부로 부정하면 비난하는
고상함을 갖출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비난할 정도로
고상해졌다는 건 아닙니다
무엇이든 사랑이었다고 우기는
'쓰레기'가 없지 않으니까요)
마침내 사랑이, 당신이
보여주는 것만을 사랑하는
피동적인 사랑을 넘어
당신이라는 '사람'으로 향하는
능동적인 사랑으로 깊어지면
비로소 당신의
동물성도 찾으려 하게 될 겁니다
이걸 그럴듯하게 말하면,
마침내 당신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하는 겁니다
사랑은 '나'를 당신에게 수렴시켜
모든 제약과 규범에서 벗어나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도
계면쩍음이 전혀 없는 상태로의
나를 해방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어쩌면, 이 해방의 유무가
사랑의 관건이 될 겁니다
우리는 이 사회 안에
군중 속의 개인으로 태어난 탓에
태생적으로 외로운데,
그런 나를 보여줘도 좋은
당신을 만드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이라면 가만 놔둬도
가슴을 태우는 단맛을 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동물성을 사랑합니다
먹고, 자고, 싸는 것 등,
모두 알고 있는
본능이라고 부르는 것들입니다
만족하면 무시하게 되는 것들이고,
같은 욕구가 끊임없이 되풀이되기에
우리는 그걸 사랑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순수한 쾌감이라 하면,
나는 성적 절정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그 정도가 모두 같지는 않지요
'원나이트 스탠드'하는 상대와는
오늘 몫의 절정을 소비하고 말지만,
같은 성욕의 발현이 분명한데도
사랑하는 그에게서는 영원을
갈무리하는 듯한 쾌감을 느끼며,
타인의 3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보다
민무늬의 고작 반 돈인
내 손가락의 금반지가 더 소중한 이유는,
나를 사랑하는 그가 내게 끼워준,
사랑의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야구모자에 허름한 옷을 입은 사내가
종잣돈으로 자신의 바이올린 케이스에
동전과 지폐 몇 장을 놓고는
워싱턴 지하철역에서 43분 동안
클래식 음악 버스킹을 했는데, 고작
32불 정도의 수입을 건졌습니다
이 버스킹은 워싱턴포스트 기자의
제안으로 이뤄진 실험이었는데, 그 사내는
세계적 명성을 가진 바이올린 연주자였고,
그가 사용한 바이올린은 350만 불짜리로
스트라디바리가 제작한 것이었는데,
그는 지난밤 보스턴 심포니홀에서
초청연주를 한 후, 그 실험에 참여한 겁니다
이 실험에서 얻은 것은, 다른 모든 것처럼
그 행위와 '나' 사이의 맥락이 없으면
무엇이든 의미가 거의 없으며,
예의 그 연주도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바이올린 소리에 불과했다는 겁니다>
무엇이든 대상과 나를 잇는 고리가
쾌감의 정도를 구분하게 한다는 것이지요
이 이야기는 폴 블룸의 책*,
<How Pleasure works>에 실렸는데,
이 이야기를 확장하면,
삶과 '나'의 맥락과 역사가
나를 사랑하게 하고,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게 한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아니면, 우리는 지금 죽기 위해 삶을
견뎌내고 있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초식인간이든, 육식인간이든
우리가 말하는 사랑을 당장 해야 하는 건,
삶이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죽음보다는 영원을 담보하려는 사랑이
나를 쓰며, 삶을 쓰는 방식 가운데
가장 현명한 방식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글 번역판, <우리는 왜 빠져 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