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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소비

생각편의점

by 어뉘

인간 소비




행인 1, 행인 2, 아니면

주민 1, 주민 2처럼

우리는 시간을 소비하듯

인간을 소비하지만,

당연하게도 이 소비가

서로 대칭적이지 않은 건,

틀에 갇힌 시간과 달리

인간 소비는 소비 주체인

'나'가 분방함을 가진 까닭입니다


말하자면, 내가

한강*을 소비하는 방법은

그를 사랑하는 겁니다만,

아무리 한강을 사랑한다 해도

그건 한강과는 무관합니다


내가 한강을 소비하는 그 시간에,

한강은 내가 존재하는지 모르는 채

나를 소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기회비용을 지불하는 것과 같은데,

시간에 얹혀있는 삶이 원래,

기회비용의 산山을

허리춤에 매달고 다닙니다)

인간으로서 같은 시간의 틀을 가졌고

그의 시간도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엄밀히 말하면, 그는

소비하는 줄도 모르고

나를 소비한다거나,

내 주관적인 입장에선, 내가

소비당한다고 해도 될 겁니다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소비가 비대칭적이랄 수 있나요?

딱히 그렇다고 할 수 없을 겁니다


이미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 안에는 '우리'보다는

'나'가 살기 때문에

한강의 '나'와 내가 가진 '나'는

같은 '나'가 아니고, 그래서

소비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서로 다른 개인의 소비 방식을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가끔, 우리 주위에 있다는 건,

다시 말해, 소비 방식이 같아야 한다고

핏대를 세우는 건 불행합니다


그가 나를 알아야 할 이유가 없고,

그가 나를 어떻게 소비하든

그건 그의 몫으로 남겨둬야 합니다

만났다 해도, 그가 나와 마찬가지로

사랑할 것인가는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누가 나를 가슴에 담을지, 또는 내가

누구를 마음에 담게 될지 모르면서

누군가를 소비하다 죽는 우리가,

생활의 테두리 안에서의 만남을

만남의 전부로 받아들이는 것은

역시 가엾은 일입니다


그런 우리가 사랑을 하려면

필히 서로 만나야 한다는 것이

적절한 생각이라면,

수십 억의 모든 지구인과

하나하나 만나보지 않는 것은

자신의 삶에 꽤 무책임하거나

불성실하다는 것이 됩니다


그게 내가 한강을 내 마음대로

소비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알디시피, 수백 번을 만나도

사랑하지 않게 되는 이가 있고,

만난 지 몇 초 만에 잊히기는커녕

그리워하게 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만남을 사랑의 필요조건으로 보기엔

약간의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를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이성이 아닌, 감성이

그를 애호해도 좋은지를 대개는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만나야 사랑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어져서 사랑이 죽는 것도 아닙니다

만난 적이 없어도 내가

한강을 사랑할 수 있는 까닭이지요


(다만, 이런 사랑이라면,

한강과는 헤어질 수 없으니까

나의 그에 대한 사랑은 죽지 않습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 뿐이지요


또한, 그때에도

내 변덕스러운 사랑이 그에게

아무런 아픔을 주지 않을 거라는 건

내게 즐거운 일입니다)


흔히,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지요?

매혹을 사랑과 같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면 모르지만

말은 그럴듯해도 우리는 그걸

정답으로 가질 수 없는 동물입니다


대개는, 눈에서 멀어졌을 때,

내 사랑이 어떻게 될지

'내 마음 나도 모른다'가

정답에 가깝습니다


그게, 시쳇말로 착한 사람이 흔히 하는

인간 소비 방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거나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이 상처를 받는다면

사실 좀, 우스운 일입니다


그건 내 사랑이 그렇다는 것일 뿐,

당신 자신의 사랑스러움과는 거의,

또는 전혀 관계가 없으니까요







*나 혼자 소비하는 바에

자꾸 그의 이름을

들먹여서 미안한데, 굳이

'소개가 필요 없는 이름'이기에

그 이름을 씁니다

아끼다 보니, 겨우

'야간열차'를 썼을 때의

젊은 그를 사랑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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