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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었으면, 뭘 해야 해요?

생각편의점

by 어뉘

들었으면, 뭘 해야 해요?




당신이 사랑한다고 했으면

가타부타, 무슨 말이라도

있어야 할 게 아니냐?

사람을 무시하는 거냐?


그런 거였어요? 당신의 고백에

내가 입에 침이라도 흘리면서

맴맴이라도 해야 하는 거였어요?


날 사랑하는 게, 느닷없이

사랑할 자격증이라도 땄어요?

내가 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왜 내가 고민을 해야 해요?

고민이고 뭐고 당신이 하세요


깊은 밤, 저 혼자 짖는

건너 마을 누구네

강아지 울음소리에

창문 열고, '나도 그래!'

해야 된다는 거예요?


내게 신경 쓰지 말아요

당신 사랑에 신경 써요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당신 하는 거, 당신 멋대로 해요

왜 날 갖고 그래요?


사랑받는 거, 당연히 좋지요

하지만, 내게 그 사랑이 그저

싫지 않은 거라면, 그런가 보다 해요

내가, 뭐, 달맞이꽃이에요,

꾼 돈을 안 갚았어요?

당신은 달도 뭣도 아니거든요


당신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당신을 사랑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혹시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내가, 뭐, 사랑 가게를 차린 것도 아니고,

당신이 뭔데, 내게 사랑해라 마라 해요!

내가 사랑할 거예요, 누굴 사랑하든

사랑은 내가 한다니까요!



사랑하지 않아도 좋은데

괜히, 그리고 아무런 의무 없이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거든요


사랑엔 사랑의 객체와는 무관하게

사랑의 주체인 나뿐이에요,

사랑하거나, 하지 않느냐를

아는 건 나 자신이거든요


그래서 잘 모르는

29세의 키이라 나이틀리를 사랑하고

38세의 나오미 해리스를 사랑하고

나이를 알고 싶지 않은,

그러나 쓸데없이 알게 된

한강을 사랑하고, 한지민을 사랑하고,

46세의 레이철 티코틴을 사랑하고,

<러브 액츄얼리>의 빌리 맥의

코러스 가운데 왼쪽 끝에 섰던 그까지,

잘 모르는 인생도 사랑하게 되거든요

(아, 이건, 좀 미안해요

어쩌다 보니, 다 여성들이네요

그러나, 당신이 사랑한다고 하는 이들이

남성이나 트랜스젠더라고 해도

당신을 미워하지 않을 거, 알지요?)


어쨌든, 내게 사랑한다고 했다고

목을 빼고 내 눈치를 살피지 말아요

사랑은, 관계가 아니라니까요!

사랑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사회적 동물인지

확인하게 되는 것이 두렵단 말이에요


또한, 나를 무시하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내가 하는 당신 사랑을 그만둬야 한다면

나 자신이 너무 불쌍하고, 바보 같잖아요?


적어도 당신이 사랑할 만한 사람을 만나

즐거워하는 모습이라도 봐야

당신을 사랑하는 보람이라도 있지 않을까요?

뭐, 굳이 보람을 찾자는 건 아니지만

그래야 내가 덜 가여울 것 같아요


나는 사랑할 만큼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당신과는 무관하게, 나 자신을 위해서요

그게 내 자존감이고

그게, 내가 당신의 사랑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이유인 걸요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데에

전혀 토를 달지 않고, 그런가 보다 할 테니까,

당신도, 그런 당신을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토 달지 말아요,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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