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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으면, 영원이 낯익다
생각편의점
by
어뉘
Dec 6. 2024
젊으면, 영원이 낯익다
자궁에서 벗어난 내가
최우선으로 배우는 것이,
누가
내 욕구에
호의적인가를 알아챈 뒤,
그 시혜자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생기는
집착일 겁니다
그런 우연과 힘께
우리는 한 삶을 삽니다
(당신이,
세대
간의 만남을
필연으로 여긴다 해도
반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당신 때문에 의미 없이 죽어간
수많은 정자들,
'나'로서 살 수 있었던
또 다른 '
나
'를
잊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애정 어린 눈으로 보면
그런 집착을 안고 사는 내가
가여워 보일 수 있습니다
내 것이 아닌 것들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고
끊임없이 속앓이를 하고 있니까요
이
측은지심의 발현은
신이 가질 수 없는 동정심으로,
우리가
싯다르타와 같은 인간의
시선을 갖고 있는 까닭일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이란 말을
갖게 된 이유일 겁니다
우리는 모두 두고 떠납니다
자꾸 돌아봐도 영원히 갑니다
사랑이건, 집착이건 우리의
만남과 헤어짐 안에 있습니다
느닷없이 세상에 던져져*
한 삶을 사는 인간으로서
너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문제는, 많은 이들이 어려서 배운
집착의 영향으로
자신이 하는 것
보다
더
사랑을 받으려는 이기심입니다
마치 이 생각편의점에서 생각을 사는 것,
공감의 여부를 가늠하는 것,
쓸모가 없다며 구매를 망설이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거래라는 겁니다
아무리 주기만 했다거나
받기만 했다고 해도
따져보면, 주고받은
사랑의 합은 0(零)입니다
외사랑을 했다 해도
당신의 사랑과 당신이 즐겼던
그의 사랑스러움을
차변과 대변에 두면
사랑 대차대조표의 양변은 같습니다
사랑할 자격이 있는 당신은,
당신의 성性이 무엇이든
테레사 수녀처럼은 아니어도,
적어도 어른이 되어
당신의 사랑을 당신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사람일 겁니다
영원한 사랑은,
그런 당신이 합니다
실제 삶을 잘 새겨보면,
젊음이 영원을 이야기할수록
젊음은 아름다워집니다만,
늙음이 젊음을 이야기하면 할수록
하염없이 추해집니다
"다 늙어서..."
젊음이 자연스러운 것일 때, 늙음은
우리의 삶에
부자연스럽습니다
영원이 젊음의
언어인 이유이고,
그 말을 입에 담는 당신이라면
아직 젊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이란 것은
내가 죽고, 그래서
아무것도 의미할 수 없게 된
상태를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젊음을 잡아주지 않는 영원은
불유쾌한 데다 항상 거짓인데,
그것을 입에 담은 우리는
그 말에 우리 자신이
책임질 수 없다는 사실을
그 말이 품고 있는 결기로
엄폐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죽을 때까지의 시간을
우리의
영원의
길이로
받아들이는 게 현명하고,
그런 영원을 아는 그를
사랑해야 현명할 겁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귀에
사랑이란 말을 들려주었다면,
영원이라는 말도 들려줄 겁니다
우리가 가진 시간의 의미를
없앨 수 있는 게
그것뿐이니까요
그리고, 그 말이
거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즐거워할 수 있는
젊은 당신을
하염없이 사랑할 겁니다
*하이데거가 쓴 개념, 피투성(被投性). 인간을 자신의 의지나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무작위로 사회에 내던져진 존재라고 봤다. 이 개념을 거꾸로 읽으면, 우리가 함부로 던져졌기에 당신과 나의 만남처럼, 모든 것과의 조우를 인연으로 여겨도 좋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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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뉘
창작 분야 크리에이터
사랑엔 중고가 없다
저자
사랑을 말하는 건 그것엔 중고가 없어서 늘 낯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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