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편의점
문자 그대로 해석해도 이상하지 않고,
요즘 티브이에 수시로 열리는
나라를 말아먹으려다 막히자
찌질해진 별들과, 하는 말로 보아
그들을 쓰고 버릴 소모품으로
여긴 듯한 부조리한 인간의
복합, 또는 융합 전시회를 보며,
'떳떳하다면 거리낄 게 없다'고
비틀어 해석해도 일리만 있으면 그만인
대도무문(大道無門)이란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 그 해석의 그름을 따진다면,
"이 말이 너 같은 인간 때문에
알아두면 좋은 말인 건 알겠다!"
쏘아주고 무시해도 될 겁니다
즉물적인 길을 말하든,
일정한 섭리를 담아
그 말을 읊조리든
역설적이게도, 그 길을 가려는
욕심을 가진, 혹은 가졌던
이의 각성에서만 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굳이 찾으려니까
보이지 않는 걸 겁니다
그 길을 가려는 욕심을 가진 이는
죽어도 가지 못할 길이 틀림없으며,
길 자체를 모르는 이에게는
아예 있지 않은 길이기도 합니다
대개는 속(俗)에 대한 미련을 가진 채
속을 떠난 이들이
찾고자 하는 것이 그 길일 때,
속을 사는 이들은 이미 그 길을
자신도 모르게 찾은 것으로 보입니다
무식한 중국 아낙이 말했다*
"누군가가 우리를 낳았고,
우리가 누군가를 낳는다
그 밖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뭔가?"
린유탕의 <생활의 발견>에 실린 건데,
중국 아낙의 위와 같은 일갈을,
나는 그 책의 요약으로 봅니다
이 인용을 읽은 때, 머릿속에 불이 켜지는,
엉킨 실타래가 풀리는 느낌이었던 때문에
삶이 거북할 때 자주 떠올립니다
주변에 책이 흔하지 않아
옆집 형의 채꽂이에 있는
깨알 같은 글자로 인쇄된
두툼한 책을 이것저것 마구 읽어내던
중학교 2학년 때 읽은 책이었고,
나 자신은 생체 생리적으로
자위를 하고 있었고, 그래서
답을 모르겠는 '삶'을
한참 묻고 있을 때였습니다
여하튼 그 아낙에게 길이 있었다면
자신이 낳은 '아이'였고, 그렇게
그 길을 이미 가는 걸 겁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혹은 살아야 할 것인가에
매달려 안달하는 것은, 나를 구속할
그 길을 찾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저 주어진 나를 사는 것,
나를 죽지 않게 할 수 있는
수많은 선택을 하다가
어느 날 죽어 없어지는 것,
거기엔 찾을 길이 없다는 것을
아낙은 벌써 알고 있는 듯합니다
어찌 보면, 대도무문은
무애(無礙)와 맞닿아 있고,
이 세상을 마주한 내가
가질 수 있는 바람직한 태도를
말하는 것이기도 할 겁니다
나로서 나를 사는 것은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겁니다
행복하거나 불행하다는 건
다른 이가 아니라
내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흔히 듣는 이야기와도 통합니다
말하자면, 내게 당신이 사랑스럽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 자신의
사랑스러움과는 무관하다는 것인데,
그게 내가 찾는 길이 아니라고
감히 누가 말하겠습니까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건, 그래서
비난받을 일이 전혀 아닐 겁니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신이
나를 만들었다면, 사는 동안
내가 즐겁게 살려고 하는 것만으로도
기특하게 여길 게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찾아야 할 길이 있다면,
어느 길을 가든, '나 '자신이 그 길일 겁니다
그렇게 사는 당신이라면
내가 당신에게 반할
모든 걸 이미 갖춘 겁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지요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As Chinese illiterate women put it,
"Others gave birth to us and we give birth to others. What else are we to do?"
(The Importance Of Living, 23 쪽, 1937년 존 데이 출판사 간, 1938년 4쇄에서 발췌)
**윤동주의 <서시>의 일부, '주어진 길'을 사명으로 읽는 이도 있지만,
요절한 그에게도 굳이 찾아 넘어야 할 문은 없었던 듯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