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으로 한 사람을 바라보려 한다.
시골 동네에서 만난 10대 커플은 20대가 되어 서울로 올라왔다.
작은 반지하에서 시작한 둘의 신혼생활.
방을 한 칸씩 넓혀가며 그들의 세 아이를 낳았다.
각박해져오는 세상을 견디는 동안 그는 가족과 점점 멀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술을 마셔야만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자주 취한 탓에 가족과 나눈 말들의 절반은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몸 또한 망가져 갔다.
그는 바로 나의 아빠이다.
어느 날 나는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는 왜 그렇게 살아?"
이 질문은 비난도 걱정도 아니었다.
정말로 이해하지 못해서 나온 말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아빠는 짧게 말했다.
"난 이게 행복해. 내 인생이야"
조금 울분이 섞인 목소리였다.
그 말이 진심처럼 느껴져서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실망해야 할지, 인정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문득 내가 힘들 때 가장 위로가 되었던 말이 생각났다.
"누구나 행복을 선택할 권리가 있어"
그 말을 듣고, 나는 자주 다른 사람에게 같은 위로의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가까운 가족에게는 쉽게 건네지 못했다.
그제서야 나는 아빠를 부모가 아닌 하나의 사람으로 보게 되었다.
짧다면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나와 다르지 않은 한 사람으로.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시절 가장이 되어
추운 날에도, 더운 날에도 일을 하러 나가던 사람.
"이제 아빠만의 행복을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어"
아빠에게 용기내어 한 말이었다.
그날 우리는 부모와 자식이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마주앉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만약 그를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채로 보냈다면 나는 오래도록 그 마음에 묶여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가 서로에게 건넨 마지막 선물은
그날의 대화, 서로의 삶에 대한 이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