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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해 Aug 18. 2019

심플 스틱, 스티브 잡스의 인피니티 건틀릿

<미친듯이 심플>을 읽고

<미친듯이 심플>의 저자 '켄 시걸'

 스티브 잡스의 ‘심플 스틱’은 어쩌면 타노스의 ‘건틀릿’일지도 모르겠다. 6개의 인피니티 스톤이 장착된 건틀릿의 손짓 한방이면 생명체의 절반이 휙 사라지듯 잡스가 납득할 수 없는 생각들은 심플 스틱이라는 미명 아래 곧 삭제된다. 다만 타노스의 건틀릿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심플 스틱은 애플 철학의 근간이자 언제나 애플을 성공으로 이끈 명확한 기준이었기 때문에 구성원 모두는 고개를 끄덕이고 따른다는 점이다.

 인피니티 스톤을 모두 모으는 게 어려웠던 것처럼 심플 스틱의 재료 역시 켄 시걸이 책에서 아무리 친절하게 설명해줬다고 한들, 책 한 권 읽었다고 이를 모두 내 것으로 만드는 길은 깜깜해 보인다. 심지어 심플스틱의 재료는 11개로 인피니티 스톤 재료보다 거의 2배나 많다! 다행히 애플에서는 심플 스틱에 관련된 힌트를 몇 가지 더 흘려줬는데 그 중 강력한 두 가지 힌트는 ‘디터 람스’와 ‘피카소’다. 애플 디자인의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전설적인 디자이너, 디터 람스는 “Less is better”을 외쳤고, 애플 대학의 교육 과정에서 배우는 황소 그림을 그린 피카소는 형태를 쪼개고 단순화한 큐비즘을 만들었다. 두 사람의 철학은 공통적으로 simple과 연결된다.

피카소가 그린 황소의 단순화 과정

 이들의 철학을 조금 더 깊게 파고 들어가 보면 심플 스틱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디터 람스는 디자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제품 고유의 질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피카소도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표현하려는 시도 끝에 새로운 화풍을 창조해냈다. 스티브 잡스 역시 마케팅이나 디자인에 있어 본질을 강조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흥미롭게도 동양화에서도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야만 ‘여백의 미’를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는 노자가 도덕경에서 이야기하는 ‘비움으로써 꽉 채울 수 있다’는 철학이 스며들어있다. 마침 스티브 잡스도 거의 똑같은 말을 했다. “심플함에 이르는 순간 산맥도 옮길 수 있다”고 말이다. 결국 스티브 잡스,디터 람스, 파블로 피카소 그리고 노자 모두 본질이라는 목적을 위해 simple이라는 수단을 이야기하는 셈이고, 이쯤 되면 이 공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진리일지도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켄 시걸이 정리한 11가지 심플함 요소 모두 ‘본질'에 대한 이해라는 주제에 대입시켜 다시 읽어보면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읽힌다. 차라리 책의 제목이 <Insanely simple to Essence>였다면 처음부터 더 잘 읽혔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 정도로!


무더위에는 겨울이 생각나고, 강추위에는 여름을 떠올리는 법. 앞으로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심플함에 대한 갈증은 커지고 잡스를 향한 그리움도 점점 커질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은 이들에게 본질에 이르는 보물 지도를 남기고 떠났다. 그 보물 지도는 그의 인생과 애플의 철학 곳곳에 녹아 있고, 그와 함께 일했던 인물들의 말과 글을 통해 복음처럼 전파된다.


 점점 복잡해지는 흐름 속에서 스티브 잡스는 심플함의 아이콘이자 종교 그 자체가 되어간다.

"I am steve jo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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