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팔리기 시작했다>를 읽고
그동안 살면서 만나온 사람 가운데 인기 있었던 사람을 천천히 떠올려보면 저마다 다른 매력이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 늘 주위에 친구가 끊이지 않았던 K는 봉숭아학당에 나오는 개그맨들의 성대모사를 똑같이 따라 했고, 중학생 때 여자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J라는 친구는 조각 같은 외모로 당시 폭발적 반응을 누리던 귀여니 소설에 나올 법한 외모를 자랑했다. 고등학교 때는 S라는 친구가 공부도 잘하는데 아는 것을 혼자 누리지 않고 친구들에게 친절하게 그 지식을 나눠줘서 늘 인기가 많았다. 회사에서는 L님께서 늘 웃는 얼굴로 사람들에게 상냥해서 누구나 같이 일하고 싶어 했다. 이처럼 사랑받는 사람들은 웃기거나, 잘생기거나, 똑똑하거나, 친절하거나 전부 저마다의 확실한 이유가 있었고, 그 빛나는 매력은 주위 사람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드디어 팔리기 시작했다>에는 잘 팔리는 초일류 브랜드 25개가 정리되어 있다. 인기 있는 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책에 소개된 브랜드 역시 팔리는 확실한 이유가 있다. 고유한 사명을 가졌거나, 즐거운 문화를 만들었거나, 상식을 뒤집었거나, 미친 듯이 집요하거나,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했거나! 이렇게 사명, 문화, 다름, 집요, 역지사지라는 다섯 카테고리 안에서 각 브랜드는 오랜 시간 그들의 길을 나아가며 성장한다. 물론 모두가 처음부터 잘된 것은 아니다. 고객들의 마음을 얻지 못해 위기를 겪은 적도 있고, 심지어는 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멈추지 않는다. 가끔은 전략을 수정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해야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것을 그 브랜드만의 색깔로 꾸준하게 덧칠하며 결국에는 고객들에게 인정받고 팔리기 시작한다.
브랜드의 어원은 태운다는 뜻의 노르웨이 고어 ‘brandr'라고 알려졌다. 가축의 소유주가 본인 소유임을 나타내기 위해 가축에게 새긴 낙인에서 유래한다. 삼겹살을 굽는 고기판도 달궈지는 데까지 필요한 임계점이 있듯, 이름이 빨갛게 새겨지는 데에도 분명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브랜드에도 이와 같은 임계점이 있을지 모르겠다. 진짜 좋은 브랜드는 분명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유행처럼 생겨난 브랜드는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지만,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꾸준히 나아가는 브랜드만이 마지막에 살아남는 초일류 브랜드로 거듭난다.
흥미롭게도 이 책에서 다루는 25가지 브랜드 이야기는 모두 사람에서 시작되는데 심지어 25개 사례 중 5개는 아예 사람만을 다룬다. 프롤로그에 언급된 ‘현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세일즈맨이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우리 모두 브랜드일 수 있겠구나’라는 전제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다만 누군가는 본인이 잘 팔 수 있는 것을 좀 더 확장해서 눈에 보이는 브랜드를 만들었을 뿐! 그렇다면 결국 사람이나 브랜드나 그 본질은 매한가지 아닐까. 사람과 브랜드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좋은 브랜드가 되기 위한 모범 사례는 우리 주변에도 충분히 많다. 탈무드에서는 ‘만난 사람 모두에게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자가 세상에서 가장 현명하다’고 했다. 좋은 브랜드가 될 수 있는 소중한 힌트와 기회를 어쩌면 매일 만나고 있었던 것 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인간은 다른 이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한다. 아마 브랜드도 많은 고객들에게 알려지고 팔리고 싶어 할 것이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시가 하나 있다. 다른이에게 인식되고 싶은 인간의 갈망을 잘 표현한 김춘수의 <꽃>. 사람 대신 브랜드를 대입시켜 패러디해보며 나도 언젠가 잘 팔리는 브랜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본다.
<꽃>
내가 그 브랜드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 브랜드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 브랜드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 브랜드는 나에게로 와서
드디어 팔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 브랜드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팔리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