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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Feb 28. 2021

천국에 갈 수 있을까

5만 원으로 사고 싶은 천국

늦은 오후,

천변을 따라 산책을 나갔다.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개울 건너편 마주오는 방향으로 할머니와 어린이가 손을 잡고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 두 사람을 마주치는 상황은 오늘이 두 번째다.

여러 달 전에 원룸 근처 쓰레기 수거함 옆에서 가방을 짊어진 할머니가 가방을 짊어진 어린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난 불행한 상황을 보는 것이 불편한 사람이다. 안타까움이라든가 연민보다 앞서 피하고 싶단 생각이 먼저 드는 비겁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을 비켜 빠르게 장소를 이동했었다.


그때도 오늘도, 빨간색의 외투가 환해서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 잘 보였다.

둘은 천변 길에서 인도로 올라가는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아, 조심스럽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등어리의 가방이 무거워서 천천히 올라가는 것이란 걸 뒷모습을 보고서야 알았다. 계단에 올라서자 기둥에 놓인 쓰레기봉투를 살피더니 다시 천변으로 천천히 내려왔다. 오늘은 이상하게 두 사람을 비켜가지 못하고 눈이 따라다녔다.

그러면서 저 두 사람이 내 앞으로 오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을 하고는 가던 길을 걸어가다가 다시 그 위치로 돌아왔다. 내 앞으로 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인지, 내가 그 사람들에게 가려는 건지, 그곳을 비켜가려는 것인지 도대체가 내 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내 핸드폰 속 비상금을 떠올렸다.

'꺼내라, 누가 보면 어떻게 해,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뭐라고 말을 걸지, 그냥 비켜가, 아냐 그것 드리고 가, 나 만 원짜리 없어, 5만 원은 조금 많잖아', 머릿속에서 난리가 났다. 일분도 안 되는 시간에 맘 속에서 요동을 쳤다.


그 잠깐의 순간 갑자기 어릴 적 교회학교에서 들었던 동화가 생각이 났다.

'어느 마을에 며칠 굶은 사람이 찾아왔다. 그 사람은 부잣집 대문에 서서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했다. 부자는 그 사람을 집으로 들이기 싫어 텃밭으로 갔는데 커다란 수박이 눈에 보였다. 저걸 줄까? 하다가 너무 커서 아까운 생각이 들 때 참외가 보였다. 그럼 이걸 줄까? 생각했으나 그것도 커 보였다. 그래서 마늘 한 통을 캐서 줬다나. 배가 고팠던 사람은 마늘 한 통을 먹고 금방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후 부자는 죽어서 심판을 받게 되었단다. 생전에 착한 일을 한 적이 있냐고 하나님이 물으셨을 때 마늘 한통 준 것이 생각나서 말을 했더니 하나님은 마늘 한 통을 건네주시며 이걸 잡고 하늘로 올라오라고 했단다. 마늘 한 통에 매달려 하늘로 올라가다가 두 손 사이로 마늘 한 통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지옥으로 떨어지면서, 수박을 줬더라면 안고 올라갈 텐데, 아니 참외라면 두 손에서 빠져나가지는 않았을 거야, 울며 후회했다.'는 이야기다.


어쩌라고,

쉰 넘은 중년이 옛날 동화에 발목을 잡혀 움직이지 못하는 사이,

그 둘은 개울 사이에 있는 다리를 건너 내 앞으로 지나가는 중이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할머니 어디 가세요?"

할머니는 아는 척을 하는 내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셨다.

핸드폰 포켓 속에 있던 돈은 제 발로 걸어 나와서 내 손에 들려 있었다. 누가 이상하게 볼까 봐 급하게 할머니의 주머니에 넣어 드렸다.

"이것 쓰세요", "아이고 고마워요, 코로나 때문에 힘들 텐데."

못 들은 척 얼른 돌아서서 천변을 따라 빠르게 걸었다.


할머니는 가방이 무거워서 허리가 구부러진 것이지 아주 심하게 늙어 보이지는 않았고 어린이로 보였던 그는 장애가 심한 청년이었다. 지체 장애가 있고 눈도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그 청년의 손을 계속 잡고 있었다. 천천히 걷는 걸음의 이유는 등어리의 가방뿐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왜 쓰레기를 살피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쓰레기 그만 살피고 따뜻한 저녁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에 또 마주치면 비켜 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오늘은 어릴 적 교회학교서 들은 동화가 떠올라 5만원으로 천국을 사려했지만 내 맘엔 여전히 불행을 외면하고 싶은 비겁함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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