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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Feb 27. 2021

그대들의 열심을 응원해

그대들의 긴 열심, 나의 짧은 기록

식사시간 5분 전, 학생들이 식당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어서 와~" 입은 반갑게 맞이하는데 눈과 손은 분주하다. 준비된 찬이 제 자리를 찾았는지, 찬 위에 개별 집개가 있는지, 밥솥의 밥은 잘 저었는지 배식대를 점검하고 후다닥 주방으로 돌아와 "잠시만 기다려 줘" 말하면서 국이나 탕의 간이 적당한지 맛보는 동안 학생들은 들어온 순서에 맞춰 줄을 선다.


"식사하세요~." 시작을 알린다. 학생들은 밥을 공기에 담고 반찬을 접시에 담아 개인 쟁반 위에 세팅해서 내 앞으로 온다.

나는 국을 건네주며 "맛있게 먹어."라고 말한다.


2월 지나 3월쯤이면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의 이름을 알았고 이름을 부르는 만큼 친밀감도 높아져 누구야~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웠는데 지난해는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더군다나 모자까지 쓰고 오는 학생과는 서로 눈 마주치기가 어려웠다. 누구냐고 자꾸 묻기 미안하고 얼굴을 보여 달라고 하면 못 미더워 그러는가 싶은 눈치를 보는 것 같아 조심했더니 한 학기가 끝날 때까지 어떤 학생들은 이름과 얼굴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친밀하지 못했던 것 미안해서 하는 변명일 뿐이다.


매년 6월은 교생실습기간이다. 저녁식사 시간이 가까워지면 기대가 되었다. 말쑥한 차림의 풋풋한 예비 선생님들을 대하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아이들을 좋아하는 학생들은 얼굴에서 생기가 돌았다. 친구들과 자신이 맡은 아이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얼굴은 웃음이 한가득이었다. 그런 학생의 이름표엔 아이들이 붙여준 스티커로 가득했다. 스티커가 많이 붙어 있으면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다는 표다. 그래서 즐거워 보이는 학생들에게 에너지를 전달받았고 더불어 신이 났었다.


실습기간이 즐거운 또 다른 이유는 학생들이 실습 학교에 가 있어 점심을 준비하지 않고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작년(20년도)에는 온라인으로 실습을 하여 어느 달과 마찬가지로 점심을 하느라 온종일 식당에서 살게 되었다. 학생들도 컴퓨터를 켜고 실습하고 밥을 먹으러 오니 다른 달과 별로 달라질 것 없는 표정이고 차림이었다. 싱그런 에너지를 전달받지 못해 지치는 6월이었다.


그러다 8월은 코로나 19의 재확산으로 학생들이 불안해했으나 9월 임용 티오가 확정 발표되었고 학생들의 열심은 더욱 커졌다. 그들의 열정은 어깨에서 느껴졌다. 월, 화, 수, 목, 금, 요일 스티커를 어깨에 붙이고 다녔다. 나 공부중!이라는 표시였다. 학교 도서관을 이용하려면 발열체크를 하고 어깨에 요일 스티커를 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나도 느슨해진 정신을 팽팽히 붙잡고 학생들의 열정을 닮아가기로 했다. 아자, 파이팅!


어깨에 월. 화, 수, 목, 금! 스티커를 붙인 학생들이 늘어났다. 배식을 기다리는 동안도 동반자와 스터디가 이어진다. 무언가를 질문하고 대답을 하는데 가끔 들리는 그 말들이 재미있었다.



콩나물이 파랗게 되는 건 왜 그렇지? 라든가 병아리가 알을 낳으려면 몇 주가 지나야 되나? 닭이 얼마나 사는지 알아? 이런 식의 질문도 있었다.

또 영어로 말하고 영어로 대답하기도 한다. 그럼 그 유창한 발음에 놀라고 술술 나오는 대답에 감탄한다.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모자도 쓰고 나타났지만 불타는 눈빛이 보였다. 우리 학생들의 열심에 비하면  코로나 19 따위는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


계절이 바뀌고 학생들의 옷차림이 두툼해졌다. 어깨에 붙은 요일 스티커가 더 도드라졌다.

머리를 질끈 묶은 모습에 마음도 시험에 묶인듯하여 바라보는 내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밥을 먹으면서도 연신 노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반납하는 동작도 빨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국을 받으러 온 수의 손바닥에 테이핑 투성이었다.

"수야, 손이 왜 그래?" 놀라서 물었더니 "계속 필기하느라 손이 아파서요"라고 했다. 얼마나 열심히 필기했으면 저리 되었을까 안타까워 마음에 안개가 찼다. 밥을 먹는 수를 자꾸 쳐다보았다. 마주 앉은 연이와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밥을 다 먹고 그릇을 반납하는 수를 멈춰 세웠다.

"미안한데 이모가 손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

수줍게 손을 내밀어 주었다. 정말 미안해서 빠르게 셔터를 눌렀다. 카메라 화면의 손이 부어 보였다. "손 보여 줘서 고마워, 아프지 마라." 겨우 한마디 했더니 "그래서요, 눈으로만 읽고 있어요." 수줍게 대답하고는 부지런하게 나갔다.

그 바쁜 움직임을 뒤따르는 눈에 안개가 자욱해져 속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이 열심을 아시죠.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수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열심이었다.


이렇게 열심인 학생들을 위해 소박한 응원을 준비했다. 메뉴에 이모의 마음을 담아,

찐만두가 서브 요리인 날 열심히 공부한 그대들은 합격할 '만두!' 하지, 와 1차 시험이 일주일 남은 날엔 바람떡을 준비해서는 대들의 합격을 "바람!! 떡"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메뉴판 앞에서 사진을 찍어 가는 학생들도 있고 나와 눈을 마주치고 엄지 손가락을 위로 세우며 좋다는 표시를 해주는 학생들도 있었다. 마음이 통하는 기분이 들면 행복하다.

 


1차 시험 전 마지막 주간은,

일부 매식 생들이 본가나 시험장소로 이동을 하는 기간이다. 매일 "파이팅, 너는 훌륭해, 멋있어! 대단해! 일등하고 오면 현수막 걸 거야, 시험 잘 보면 문자 해라, 이모가 축하해 줄게." 하면서 화창하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속 마음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9개월간 이모 소리 들으며 매일 밥을 나눈 사이라 진짜 이모인양, 내 조카나 내 새끼를 빼앗기는 기분이 들기 때문인데 그럼 스스로에게 '무슨 권리로 그런 욕심을 내는가 하면서 주책없는 짓'이라고 나무란다.

생각해 보면 정말 주제넘은 마음이다.


11월 7일 토요일 학생들의 1차 시험이 끝났다. "이모 덕분에 시험을 잘 보았어요"라는 문자를 보내온 학생이 있어서 감사했다. 어려워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2차 시험은 방학기간인 1월에 보았다.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 몇몇의 학생들에게 문자가 왔다.

'이모 저 합격했어요, 이모가 해주신 밥 먹고 힘내서 공부했더니 좋은 결과를 얻었어요.'


그리고 며칠 전 비대면 졸업식이 있었다. 한참 배식을 하고 있는데 손에 테이핑을 해서 안타까웠던 수가 피로회복제 한 박스를 사들고 나타났다. 원하는 지역에 합격해서 바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여러 이야기 나누고 싶었으나 수도 나도 바쁜 상황이라 축하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아, 진짜 멋진 그대다.


어제는 일을 하는 도중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 확인할 틈도 없이 전화를 받았다.

'이모, 저 원이에요. 저 합격해서 특강 하러 왔어요. 이모 보러 잠깐 갈게요.'

아무리 바빠도 이런 순간을 놓칠 수 없다. 졸업생이 찾아오는 순간을 즐겨야 한다. 원이가 들어올 현관문을 한번 쳐다보고는 손을 더 바쁘게 움직였다.

합격을 축하하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누려면 일을 조금이라도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었다.

특강을 하는 합격자는 자신만의 특별한 스토리가 있다.

원이는 '1차에 합격은 했지만 안정권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모가 들려준 '스스로 돕는 자는 하늘도 돕지만 사람도 돕는다'는 말을 기억하고 2차 준비를 잘해서 좋은 성적으로 최종 합격했다.'라고 두 주먹으로 파이팅을 외치는 자세를 취하며 전해주었다. 나는 이런 말을 전해 듣기 위해 그들을 응원하고 나도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희들의 열심에 힘입어 나도 열심히 살고 있다고, 일하는 보람은 덤이라고 말해주었다.


2월이 되면 전년도 학생들은 졸업을 한다. 어떤 학생들은 임용 재수를 준비하고 또 어떤 학생들은 선생님으로 새 출발을 한다. 2월의 길은 조금 다르지만 결국 선생님이 되는 것은 시간차만 있을 뿐 모두 같다. 열심을 조금 덜 내서 재수하는 것이 아니다. 시험 보는 지역이 다르고, 컨디션이 다르고, 면접관이 다르기 때문에 결과가 다르게 나왔을 뿐이고 그들은 모두 진심으로 열심이었다.

"정말이지 열심히 공부한 그대들 너무 멋있었다. 모두 자랑스럽다!!"

이 기록이 너무 미약해 우리 학생들의 열심을 다 담아내지 못해서 아쉽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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