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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Feb 14. 2021

겨울 냉이 된장국

기름진 명절 음식보다 맛있는

설 전날, 

우리 부부와 둘째 아들 이렇게 세 식구는 혼자 계신 시아버님 댁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고기를 굽고 점심을 차려 밥을 먹는 중에,

"둘째가 며칠 전에 다녀갔는데 냉이를 한 바구니 캐가더라, 그게 그렇게 좋은가?"

아버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나도 아버님의 웃음에 점심 먹고 냉이를 캘 생각으로 신이 나서 따라 웃었다. 


냉이는 봄보다 겨울인 이때가 향이나 맛이 더 좋다. 

점심 먹은 상을 치우고 소쿠리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서 장식용 지게를 만들던 남편이 하던 일을 멈추고 삽을 찾아 텃밭 쪽으로 앞서 갔다. 


역시나 김장배추를 심었던 텃밭 두둑에 냉이가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냉이 크기가 작다. 며칠 전에 둘째 시누님이 캐갔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이 냉이가 있는 흙을 한 삽 퍼 내 앞에 놔주면 나는 흙더미 속에서 냉이를 골라 마른 잎과 잔뿌리를 떼어내고 소쿠리에 담기를 반복했다. 여기저기 퍼 놓은 냉이를 손질하다가 갑자기 와~~ 소리를 냈다. 

냉이꽃이 보여서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양지바른 쪽의 냉이에 아주 작은 꽃이 제법 많이 피어 있었다. 담벼락 아래에서는 봄까치꽃도 피어 있었다. 

벌써 풀꽃이 피었다고 놀라는 내게 남편은 입춘이 지났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내 등어리도 봄볕이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도시에서 바쁜 생활을 하느라 절기가 바뀌는 것도 몰랐는데  자연은 조용히 제 일을 하고 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2월, 따뜻한 볕과 찬바람이 번갈아 찾아오는 밭의 냉이꽃과 봄까치꽃은 조금 추워 보였다. 

꽃의 모양새가 웅크린 듯 당당하지 못해 보였다. 새해 처음 만난 풀꽃들이 신기해서 몇 컷 사진으로 담고 제일을 하는 절기마냥 나도 다시 내 할 일을 했다. 

냉이가 작아서 양도 얼마 되지 않았다. 처음 소쿠리를 들고 나올 때는 냉이무침도 하고 냉이 된장국도 끓일 만큼 캐야지 생각했는데 너무 큰 욕심이었다. 조금 마음이 아쉬워하려는 참에,

"달래도 있다. 이것도 줄까?" 

"좋죠, 된장에 넣으면 되겠네요." 남편은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흙 한 더미 푹 퍼서 달래를 골라 주었다. 그러더니 하던 일을 하겠다며 가버렸다. 

나도 퍼 놓은 흙더미 속에서 남은 냉이를 골라 주방으로 왔다. 

 

시간이 넉넉했다. 명절 준비라지만 겨우 4인분이라 할 일이 없는 것 같았다.  

괜히 남편의 취미 생활에 간섭을 하고 싶어 마당으로 나가 장식용 지게 만드는 일을 입으로 거들었다. 아니 참견을 하며 한참을 노닥거렸다. 


오후 4시가 넘어서 명절 음식 준비, 

지글거리는 프라이팬 위에서 호박전, 버섯전, 동태전을 순서대로 부쳐 놓고, 

불고기도 양념에 재 놓았다. 겨우 4인분이라 지갑에 부담이 없어서 명품 한우로 구입했다. 

나물도 준비하고 도라지 구이도 했다. 정말이지 너무 한가한 명절 음식 준비를 했는데도 상차림을 하기 전에 이미 속이 느끼해졌다. 


이 순간을 위한 바로 그것을 할 차례다. 

텃밭에서 캐온 냉이로 된장국을 끓이는 거다. 

쌀뜨물을 냄비에 넣고 가스를 켠다. 

냉이를 깨끗하게 씻어 송송 썰고, 두부도 깍둑썰기로 썰어 놓고, 대파와 속배추도 썰어 놓는 동안 물이 끓는다. 된장을 적당히 풀고 준비된 것을 몽땅 넣고 팔팔 끓으면 끝!

밥과 반찬을 식탁에 나르고 국은 최고 나중에 퍼서 밥 옆자리에 놓았다. 

"냉이가 달아."

"국이 시원하네요." 

"이거 냉이 된장국이냐? 맛있다."

남편과 아들이 엄지 손가락을 세워주었다.  아버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맛있다 하셨다. 

명절이라고 지글지글 기름 냄새 피우고 명품 한우로 불고기도 했건만, 

냉이 된장국이 제일 맛있단다. 

내 입에도 기름진 그것들보다 냉잇국 맛이 더 좋았다. 저녁식사가 끝난 식탁 위 접시엔 음식들이 조금씩 남아 있었으나 국그릇만큼은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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