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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Jan 14. 2021

세아들과 아빠가 만든 이글루

추억을 소환하다

지난밤 눈이 왔어요.  함박눈이  내렸습니다. 

2013년 새해 첫 날에도 엄청나게 많은 눈이 왔습니다. 그날 우리 가족은 소중하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그때의 기록을 옮겨 보았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눈이 쌓인 놀이터를 내려다 보던 큰아들이 새해의 첫날을 의미있게 보내고 싶다고 했다.

둘째와 쑥덕쑥덕 모의를 하더니만 오전 10시쯤 이글루를 만들겠다며 놀이터로 나갔다. 

준비물은 '눈 모으기용 밀대, 20리터짜리 물통, 플라스틱 김치통 2개, 물뿌리개 하나'다. 

놀이터에서 이글루를 만들기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둥글게 터를 닦았다. 플라스틱 김치통에 눈을 꽊꽉 담아 물뿌리개로 물을 뿌려준 후 김치통을 뒤집으면 완성된 눈불럭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식으로 두개의 김치통을 이용해 눈불럭을 만들어 한칸의 벽이 완성될 즈음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거실에 있던 막내아들도 어느틈에 놀이터로 나가 작업에 끼어들었다.

이글루를 만들기 시작한 두 아들과 구경나온 이웃들


그들은 아들들 옆에서 눈사람을 만들어 놓은 후 밀대로 눈을 모아주고 눈불럭을 만드는 일에 참여 함으로 구경꾼에서 일꾼으로 역할을 바꾸었다. 


점심 시간이 지났다. 밥 때를 잊은 것이 틀림없다. 참다 못한 내가 창문을 열고 "밥먹어라~" 소리를 질렀다. 알았다는 대답을 하고 그만이었다. 놀이터로 나가 억지로 데리고 들어왔으나 밥을 먹는둥 마는둥 하더니 다시 밖으로 나가 작업에 빠져들었다. 

또 눈이 내린다. 어이쿠! 함박눈이다. 감기 걸릴까 걱정이 되었다.

창밖을 지켜보던 아빠가 작업 진행이 늦다는 걱정을 하더니만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놀이터로 나갔다. 나도 따라 나갔다.  이렇게 온가족이 출동을 했다. 아빠의 동참으로 작업 속도가 빨라졌다.  


입구를 만드는 작업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쉬지 않고 내리는 눈속에서 제법 모양이 만들어져 갔다. 추운 날씨임에도 겉옷을 벗어 놓고 일하는 둘째의 태도가 사뭇 진지했다. 꼼꼼한 큰아이가 입구를 완성하기 위해 눈바닥에 몸을 뉘었고 막내아들도 형님들의 심부름을 하느라 제법 바빠보였다. 

그렇게 입구가 완성이 되었고 날도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놀이터를 비추는 가로등 아래서 네 남자의 손놀림은 더욱 바빠졌다. 


지붕을 완성하기 위해  별명이 맥가이버인 아빠가 눈벽돌의 위치를 맞추고 있다.


날이 어두워져도 작업을 멈추지 못했다. 구경 나오셨던 이웃들은 집으로 돌아간지 이미 오래되었다.

밥도 제 시간에 못먹고 새해 첫날부터 눈속에서 고생한다고 나 혼자 걱정이고 남자들은 추위따윈 잊은듯 했다. 

남편은 북극 이글루 마을 원주민처럼 익숙한 솜씨로 다섯개의 눈불럭을 연결시켜 지붕을 메우기 시작했다. 

지붕 메우기를 완성하고 가는 나무를 가져와 각진 부분을 깍아내니 둥근 모양의 이글루가 되었다. 그리고 눈불럭들을 단단하게 얼리기 위해 물을 뿌려주는 일을 반복했다. 


큰아들이 이글루 속의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고 사람이 드나드는데 별 문제 없음을 몸집이 약간 넉넉한 둘째가 확인해 주었다. 


나는 집에서 돗자리 가져다 바닥에 깔고 이글루 완성을 축하하는 예쁜 초를 켜 주었다.
이글루 집들이에 막내아들과 이웃 꼬마들을 우선 초대하고 따뜻한 차와 과자를 대접해 주었다.

세명의 꼬마가 이글루 안에서 놀고 있다


큰아이가 말한 새해 첫날 의미 있는 일-

사부자와 이웃들의 도움으로 멋진 이글루를 건축했다. 


밤시간, 두 아이는온 온 몸이 쑤시고 아프다며 여기저기 파스를 붙이고 엉금엉금 기어다녔다. 하루동안 집한채를 지었으니 당연하다.

나는 아프다는 아이들 보다 이글루가 더 걱정이 되었다. 혹시 밤사이 무슨 일이 있으면 어쩌냐, 날이 좋아져서 녹아버리면 어쩌냐,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망가트리면 어쩌냐,  

얼음처럼 단단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봄까지 끄덕 없을 거다. 걱정말고 쉬라는 남편의 말을 믿지 못하고 늦은 밤까지 여러차례 창문을 통해 이글루를 지켜보았다.  
깊은 밤, 이웃의 주민들이 나와서 이글루를 살펴보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 모습을 사진 찍었다. 염려는 잊고 행복한 마음으로 찍었다. 


아이들은 여러날 몸살을 앓았습니다.  이글루는 2월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매해 겨울마다 눈이 많이 내린 날은 이글루가 있던 자리를 내려다 보며 그날을 추억했습니다. 이 달 말에 이사를 합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준 집과 이별을 합니다. 이제는 눈이 내려도 놀이터를 내려다 볼 수 없게 되어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브런치에 그 추억을 옮겨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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