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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Mar 18. 2021

플로깅 하는 아침

세 번의 색다른 체험


독서모임과 운동모임을 함께 하는 회원님이 단체 톡에 '세계 물의 날을 맞이하여 플로깅 이벤트'에 참여하자는 제안을 하셨다.


참 좋은 제안이다 싶어 참여하겠다는 답변을 했다. 이왕 하는 거니까 이벤트 참여를 위한 단발성 행동이 아닌 세 번을 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천변을 따라 거의 매일 아침 운동을 하는 중이니 쓰레기봉투와 집게만 더 준비하면 되는 거라 쉽게 생각하고 한 답변이었다.


첫날, 3월 11일 목요일.

아침 7시, 10L짜리 종량제 봉투와 집게 그리고 비닐장갑을 준비해서 원룸 앞 개천 길로 내려갔다. 걸음을 몇 발짝 걷자마자 담배꽁초가 눈에 보였다. 하나를 집어 봉투에 담았는데 옆에 또 있다. 허리를 숙이고 보니 쓰레기들이 더 잘 보였다.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다.'가 플로깅이란다. 다른 지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 줍기는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 발짝만 걸으면 담배꽁초가 눈에 보였다. 하나를 집어 올리면 바로 옆에 또 보였다. 걷기나 뛰기는 포기하고 쓰레기에만 집중하게 되었고 정해진 운동시간 안의 평소 걸음수를 채우지 못하고 돌아오게 되었다.


강아지와 함께 산책 나온 할머님이 쓰레기 줍는 나에게 당신은 봉투를 들고 다니며 강아지의 배설물을 치우고 계시다고 자랑삼아 말씀하셨다. 그러시면서 '버리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라는 말씀도 하셨다. 괜히 부담이 생겼다.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누군가의 관심이 된 것이 불편해졌다. 거기다  남편은 나를 따라다니며 인증에 필요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게 느껴져 부담이 두 배가 된 날이었다.


여하튼 10L짜리 쓰레기봉투는 담배꽁초, 과자봉지, 물병과 알루미늄 캔 등으로 채워졌다.


두 번째 날, 3월 14일 일요일.

일요일이라 시간이 자유롭다.

그래서 조금 여유 있게 아침 8시, 자전거를 타고 남편과 함께 금강변으로 향했다.

둔치 방향으로 다리를 건너는데 신문지 조각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10L짜리 종량제 봉투가 신문지 조각으로 금세 가득 찼다. 둔치 주차장에 있는 쓰레기통에 신문지 조각 등을 비운 뒤 석장리 박물관을 지나서 있는 강변 공원까지 가기로 했다. 자전거의 속도를 내는 찰나 다리 밑에 버려진 종이컵이 눈에 보였다.

자전거에서 내려 그것들을 수거한 후 다시 자전거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페달을 밟는데 이번에는 도로 위쪽으로 향하는 비탈진 면에 쓰레기들이 보였다. 너무 많다. 비탈을 올라가는 것도 무리고 준비해 간 봉투에 담기엔 쓰레기가 많아도 너무 많다. 한 번의 체험으로 저것들을 해결할 방법이 없겠다는 무력감이 몰려왔다.


평소 산책을 한다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는 길과 풍경만 보였는데 쓰레기를 줍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오니 쓰레기만 보였고 저것들을 어찌해야 하나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궁리를 해보았다.

1. '플로깅의 날'을 정해서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많은 인원을 참여시키면 어느 정도 치울 수 있지 않을까?

2.  중.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학교 단위로 봉사활동을 하게 한다면 학생들도 개인적으로 봉사시간 채우느라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여럿이 함께 하니까 지루하지 않을 것이고 시청이나 환경청 등에서 학생들에게 간식을 제공해 주면 더 즐거운 시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3.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니까 그분들과 연합해서 플로라이딩을 하면 어떨까?

하는 혼자만의 생각을 해본 것이다.


심란해진 마음을 가다듬고 목적지로  향했다. 역시 자전거길의 풍경은 참 예뻤다. 물과 나무, 그리고 봄에 어울리는 새싹과 아직은 옅은 푸르름.....

영차영차,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라 석장리 박물관을 지나치는 오르막에서는 종아리에 빵빵하게 힘이 들어갔다. 약간 힘겹게 도착한 공원 중간에 있는 쉼터에서 준비해 간 커피와 과일을 먹고 미션을 수행했다.

담배꽁초, 마시다 만 물병, 알루미늄 캔 그리고 종이컵 등이 있었다. 역시나 10L짜리 봉투는 금세 채워졌다.

오전 9시 즈음, 가족 톡에 자전거를 타고 야외로 나와서 차를 마셨다는 인증샷을 올렸다. 그리고 한마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지?"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 축하드립니다. 케이크 보내드릴게요, 또 필요하신 거 말씀하세요."


저녁에 타지에서 지내고 있는 막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에 뭐하고 지내셨냐고 물었다. 사실 특별한 이벤트도 없었고 전날과 같은 그날이었으나 막내의 기특한 질문에 플로깅을 했다고, 나름 의미 있는 일을 하며 보냈다고 답을 해 주었다.

"와~좋네, 칭찬해, 잘했어요, 사랑해요." 플로깅 덕분에 막내아들에게 기분 좋은 칭찬을 들은 날이었다.


세 번째 날, 3월 15일 월요일.

이틀 동안은 사진을 찍어주느라 남편이 함께 했고, 덕분에 쓰레기도 함께 주웠는데 세 번째 날은 혼자 했다.

준비를 하면서 걱정이 되었다. 두 번의 플로깅을 하면서 이게 은근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강아지와 산책 나오신 할머니처럼 말을 거는 사람이 있고, 쓰레기 줍는 것을 서서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기에 누군가에게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부담은 혼자서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했다.

그래도 세 번은 하기로 스스로 약속을 했으니 어쩔 수 없이 미션을 수행키로 했다.


그동안 준비물 사진이 없었다는 생각이 났다. 어차피 나 혼자 사진도 찍고 쓰레기도 주어야 하니까 준비물부터 한 장,

준비물은 종량제 봉투 10L 1개, 수거용 집게, 비닐장갑 한 쌍, 그리고 씩씩하게 걸어 다닐 나, 참으로 간단하다.

오전 7시, 씩씩한 척 천변으로 내려갔다.

이번에는 열심히 뛰고 걷기를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의 목적에 맞도록 행동하기로 했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뛰기도 하다가 눈에 잡히는 쓰레기를 집게로 수거하는 이전보다 활동적인 방식으로 해보기로 한 것이다. 10미터쯤 뛰었는데 스티로폼 박스가 바람에 날렸는지 개울에 떨어진 것이 보였다. 그것들을 잡아 도로 위에 쓰레기 분리함 쪽으로 휙 던져 올리고 다시 뛰어 보았다. 빠른 움직임은 개울 쪽의 쓰레기를 지나치게 했다. 뛰면서 뭔가 하는 것이 비효율적인 방법인 것 같아  뛰는 것을 멈추고 천천히 걸으면서 눈에 보이는 쓰레기를 수거했다.


흐르는 물에 함께 흘러가는 컵라면 용기를 발견했다. 거리가 제법 멀었지만 돌을 옮겨 발을 디디고 주어 올렸다. 낚시하는 기분! 딱 그거였다. 손맛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천변 길을 따라 꽃이 피기 시작했다. 그 꽃 주변에도 여지없이 쓰레기가 있었다.

이날도 역시나 종량제 봉투를 채우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고 담배꽁초와 휴지조각 컵라면 용기와 물병, 음료수 캔 등으로 채운 것도 앞의 날들과 같았다.



약속한 대로 세 번의 플로깅을 마치고 단톡에 인증도 했다. 우리 회원님들은 큰언니가 열심히 했다고 칭찬 일색이다. 칭찬받는 일은 즐겁기도 하지만 책임감도 생긴다. 앞으로 또 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부담^^


독서모임의 회원님 덕분에 하게 된 플로깅 체험은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드는 일에 조금 보탬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쓰레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담배꽁초가 심하게 많았다. 화재의 위험도 있는데 이건 좀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예쁜 꽃이 피어있는 개천 길에서, 강변의 자전거길에서 쓰레기봉투를 들고 플로깅 하는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며 플로이딩을 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보았으면 좋겠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닌 그저 일상의 일인 듯이.....


하숙집 이모의 책 소개, 하숙집 이모의 건물주 레시피

 https://blog.naver.com/soya_goodpr/222238831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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