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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May 28. 2021

책임질 수 없다

미안하다

 식당의 뒷문 옆에 소금통이 있다. 여러 날 전에 소금을 가지러 갔다가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소금통 옆의 비가림이 되어 있는 작은 틈바구니에서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고양이 새끼였다.

"아이쿠, 이런, 너희들 언제부터 거기 있었니?"

한 녀석이 얼굴을 내밀고 나를 감시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숨었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틈바구니가 어두워 몇 녀석이 있는지 정확히 셀 수는 없으나 분명 하나는 아니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식당의 뒷문을 열고 옆집으로 가려는데,

"야~아~옹!" 다정한 소리를 내며 어미 고양이가 가까이 다가왔다. 

솔직히 나와 그럴만한 사이가 아니다. 어쩌다 마주쳐도 못 본 체하기 일쑤였고 어느 땐 무서운 얼굴로 쳐다보기도 했었다. 그러던 녀석이 갑자기 꼬리를 내리고 상냥한 목소리로 나를 부른 것이다. 

숨겨놓은 어린 자식들을 보았으나 해코지는 하지 말라는 것일까? 입이 많으니 먹을 것을 달라는 것일까? 혼자 머리를 굴리다가 식당으로 돌아와 생선 꼬리를 찾아 건네주었다. 


참 맛있게 먹어 치우는 녀석을 보고는 "야, 난 책임 못 져!"라고 말했다. 

사실이다. 난 책임 못 진다. 

"아는 체를 하는 게 너무 뜻밖이라 내가 잠시 정신이 없었다. 너와 친해지면 뭔가 주려고 신경을 쓰게 될 텐데 난 정말이지 그러고 싶지 않다."라고도 말해주었다. 


옥상에 내 화단을 만들어 놓은 후 매일 들여다보고 있자니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해서 좋기는 한데 일하러 가야 할 시간을 놓치는 날들의 연속이다. 화초나 쳐다보고 한가한 시간을 누리고 싶어 일하기가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 그대로 남편에게 말했더니 자신도 그렇단다. 

남편의 취미를 함께 즐기고 화초를 키우며 활력 있는 생활을 하고 싶었는데 일을 하기 싫어지는 부작용만 생겨버렸다. 


그래서 화초 키우기는 내게 사치다. 집사 노릇엔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원래 시간도 에너지도 부족한 사람이다. 처음부터 화단은 불평등 조약으로 시작됐다. 남편이 물 주고 풀 뽑고 이뻐도 하고 관리하기로 했고 난 소유권만 갖고 예전보다 조금 더 자주 방문해서 예뻐만 해 주기로 했던 그 약속을 충실히 이행해야 할 것 같다. 취미 생활에 밀려 본업이 소홀해지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고양이에 대한 마음이 마찬가지다. 무언가에 관심이 생기면 집중하는 편이라 고양이에게도 무관심 하기로 한 것이다. 더군다나 새끼 고양이에게 정을 주면 그 녀석들 크는 과정을 지켜보고 책임도 져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어미 고양이의 얼굴을 마주 보며 또 말했다. 

"이전엔 네가 나를 모르는 체 했으나 이제는 내가 너를 모르는 체 하련다. 나는 너희들의 집사가 될 수 없어. 미안하다. 책임질 수 없다. 다만 너희 새끼들이 차지한 자리는 무상으로 계속 사용해라. 그것은 모른 체 눈 감아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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