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향기가 나는 구유

나무 구유 만들기

by 하숙집 이모

아침 소풍을 다니는 산책로 기슭에 잘린 나무가 군데군데 버려져 있다. 제법 덩치가 큰 통나무부터 잔가지까지 다양하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편찮으신 후 언니와 산으로 땔감을 구하러 다닌 기억이 있어서 그런 것들을 보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고 지게로 한 짐 지어다 친정 부엌 뒤꼍에 쌓아두고 싶어 진다는 말을 남편에게 했다.

남편은 통나무 한토막을 가져다가 도마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저런 통나무로 도마를 몇 개 만들어요?"

"열두 개는 만들지 않을까!"

"그렇게 많이 뭐하려고?"

"한 달에 하나씩 쓰면 되지!"

"달력도 아니고 도마를 한 달에 하나씩 바꿔 쓰라고요, 말도 안 돼, 차라리 구유를 만들어 화분으로 쓰면 어때요?"


그냥 하는 소리였다. 웃자고 하는 농담일 뿐이었다.


남편은 버려진 나무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야, 이건 너무 길다. 그냥은 못 가져가겠는걸, 내일 아침에 톱을 가져오자."

여기까지도 농담인 줄 알았다.


다음날 아침, 남편은 서둘렀고 접이식 톱자루를 가방에 챙겨서 산책을 나갔다.

남편은 개울가에 도착하자마자 톱으로 통나무를 자르기 시작했다.

세상에나,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창피할 것 같은 그 상황을 피하기 위해 적당히 떨어진 곳으로 가서 절대 모르는 사람처럼 딴청을 부렸다. 남편의 작업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으나 통나무를 짊어지고 내려 올 수가 없어 다음날 끌차를 이용해서 가져왔다.

땀이 범벅된 채로 집에 도착해 '목재소에 가서 하나 사 오면 쉬울 텐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알 수 없다.'라고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리를 했다.


주말에 전기톱이 있고 전원주택에 사는 지인댁으로 작업을 위해 이동을 했다. 잠깐 작업을 하던 남편이

통나무에 그림을 그려 보란다.


"그림? 그냥 둥글게 파면되는 것 아닌가요?"

"무슨 소리, 모양을 생각하면서 스케치를 해야지."


그래서 인터넷으로 구유 모양을 검색해 보았으나 그게 그거다. 뭐 특별한 모양이 없고 둥글게 파내는 것이 맞다.


"알았어요, 내가 멋지게 그림을 그려볼게."


통나무 위에 볼펜으로 멋진?!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 놓았다.


그렇게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었다.

통나무 속 커다란 동그라미를 중심으로 기계톱이 뚫고 들어가면서 날리는 톱밥에서 나무향기가 났다.

처음 지인댁으로 갈 때는 남편은 작업하고 나는 지인과 놀 생각이었는데 날리는 톱밥에서 나는 향기에 빠져 그 자리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나는 평소 향기에 둔한 편이다. 옥상의 꽃이 피면 남편은 인동초 꽃 향기는 어때서 좋고 장미꽃 향기는 어때서 좋다고 품평을 하는데 나는 꽃향기의 특성을 찾아내는데 둔해서 그냥 '좋네요.' 정도로 답한다.

그런데 톱밥이 날리는 틈에서 나는 향기가 참으로 좋았다.


https://youtu.be/LPOnwu9h7-Q

구수하기도 하고 묵직하다. 그러면서도 주변에 넓게 퍼지는 향기가 싱그럽다.

작업이 한창일 때 나무의 속살이 보였다.

나이테가 선명하게 보이고 켜켜이 쌓인 세월 속 감추어졌던 속내가 드러나자 향기도 여리고 가늘게 바뀌었다. 여린 향기와 꽃처럼 붉게 피어나는 속살을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머나, 나무향이 참 좋아, 나무 속살이 꽃처럼 예쁘네, 사람들이 나무가 이렇게 예쁜 줄 알면 손을 탈까 봐 속으로 감추고 있었구나."


내 감탄에 더욱 자랑하듯 남편은 통나무의 거칠고 두꺼운 거죽을 벗겨내고 작은 대패로 모양을 다듬어 갔고 구유의 다리를 만들어 구색을 갖췄다. 시간이 늦었으므로 지인댁에서 물러나와 우리 건물 옆으로 가져다 놓은 후 여러 날 동안 다듬고는 무색 페인트를 칠해 주었다.


통나무 구유를 만들면 흙을 채우고 화초를 심으려 했었다.

구유가 완성되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연한 속살에 흙을 채우면 쉽게 상할 것 같아 안타까워졌다. 내 방으로 들여가 유리를 씌우고 찻상으로 쓰고 싶기도 했지만 욕심일 뿐이다. 내 방은 비좁아 자리가 없다.


'옥상의 예쁜 꽃들을 둘이서만 쳐다보고 있으면 어떡해, 예쁜 건 여러 사람이 봐야지.'

남편의 꽃 동지인 이웃집 언니가 우리 집 옥상에 놀러 오셔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그래, 우리 식당에 두면 된다. 그동안은 식당 전실에서 화초 키울 생각은 못했는데 여러 사람이 함께 볼 수 있게 하자.

구유에 비닐을 깔고 작은 화분을 넣었다. 그 옆에 바지게가 완성된 꽃지게도 함께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