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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Mar 21. 2020

피로회복제 보내기

위로 받음 그리고 나눔

작년 7월의 월요일이었다.

남편의 행동이 이상했다. 일이 굼뜨고 말이 없다. 심한 말다툼을 하고 난 뒤라서 그런 줄 알았다.


겨우 일을 마친 저녁에 가까이 지내는 병원장님 부부가  찾아오셨다. 우리 부부의 싸움이 심상치 않아 걱정돼서 오셨단다. 그분들 앞에서 남편이 이야기를 한다.


 토요일에 운전 중 방향 지시등을 바꾸려 해도 헛손질을 하고 갑자기 침을 흘렸다고,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 하고 휴게소마다 쉬었다 오기를 반복하다 길을 이해하지 못해 이상한 곳으로 갔다 겨우 찾아 내려왔노라고 했다.


우리는 목요일부터 사이가 나빴고 서로  말을 안 하는 상황이라 처음 듣는 말이었다.  원장님은 벌떡 일어나서 남편 곁으로 가더니 눈을 감았다 떠라, 팔을 내밀어 봐라, 찡그려 봐라, 지금은 조금 나아진 거냐 등등 물으시더니 내일 아침 일찍 큰 병원을 가서 뇌 사진을 찍어보라고 하셨다.


모르는 내가 들어도 불안했다.  당장 어찌할 수가 없어 아침 일찍 병원에 가기로 했다. 이른 아침부터 병원으로 와서 1차 진료기록을 받아 대학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원장님 댁에서  재촉해 주시니 남편도 서둘러 그댁 병원을 찾아  절차를 밟은 후 대학병원으로 갔다.


점심일을 끝낼 즈음 전화가 왔다.

뇌출혈이 있어서 당장 중환자실에 입원을 해야 하니 보호자가 와서 수속을 밟으란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때 남편은 중환자가 되어 있다. 차에다 소지품을 가져다 놓고 무언가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오라고 간호사가 말한다. 남편이 주차장의 위치를 알려 주었는데 뭔 정신으로 들었는지 머리가 하얗다. 결국  차를 찾지 못해 1층부터 4층까지 모두 돌아다녔다. 다시 4층부터 1층까지 다시 돌아 내려와서 주차장이 또 있는지 물으니 반대방향에  있단다. 그렇게 차를  겨우 찾았다.  


수속을 마치고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해서 간호사에게 건네주었다. 중환자실의 면회시간은 하루에 한 번으로 정해져 있었다. 다음날 정해진 시간까지 남편을 못본다니 갑자기 보고 싶었다. 멍청히 앉아 있다가 한숨을 쉬다가 길 잃은 아이처럼 도무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심정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중환자실 앞에서 있는 것은 더욱 바보 같았다. 그래서 일을 했다. 낮에는 병원에 가야 하니 하루 한 끼 저녁만 주는 파행 운영을 하였다. 다행히 지인들이 하루씩 번갈아 오셔서 도와주셨고 학생들도 이해해 주었다. 걱정 마시라고 아저씨 빨리 회복하시기 바란다고 위로의 문자들을 보내주었다.


남편이 입원하고 바로 다음날 저녁, 제일 늦은 시간에 오는 연이 학생이 밥을 먹고 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손에는 박카스 두병이 들려있다. 이모가 너무 힘들어 보이셔요 하며 건네준다. 고마워! 라는 그 짧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목이 메더니 눈물이 나왔다. 겨우 참고 있어 더 말을 할 수가 없다.  아저씨 금방 괜찮아지실 거라고 위로의 말을 해주고 갔다.



요즘 너나 나나 힘들다. 참으로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다. 입으로만 걱정을 하다가 연이의 박카스 두병이 생각났고 나도 누군가에게 박카스 두병을 건네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때라서 친구도 못 만나고 차도 못 마셔서 용돈 통장에 여유가 조금 들어있다.


 남편이랑 누구에게 피로회보제를 보내드릴까 이야기를 나누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그가 생각났다. 많이 지쳐있을 것이라고 우리가 마음을 환기시켜 주자고 의견 합치를 보았다. 생각났을 때 해야지 안 그러면 못하게 될 것 같아 바로 전화를 했다.


잘지내고 계시냐, 몸은 건강하시냐,  못본지 오래됐다, 보고 싶다, 같이 밥도 먹고 싶다, 그런데 상황이 그러니 그댁 식구끼리 우리 생각하며 밥 먹어라, 밥값  보낼 테니 계좌번호 알려달라고 했다. 뭔 소리냐고 안된다고 거절하는 것을 밥도 한번 못 사게 한다고 야단쳐 겨우 계좌번호 받아서 달랑 밥값 보내드렸다.


피로회복제 나누기 성공했다. 마음이 즐겁다. 그분도 즐겁다 하신다. 사태가 괜찮아지면 맛난 거 사들고 놀러 오시겠단다. 그럼 더욱 반갑겠다고 대답했다.  


내가 힘들 때 위로받았던 박카스 생각이 났고 누군가를 위해 피로회복제를 나누니  좋은 하루다. 이 좋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좋음으로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그때의  사진은 없다. 제목 바탕을 차지한 것은 감기 기운이 있던 날 이쁜 정이가 사다 준 음료와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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