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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Mar 25. 2020

수수한 미역줄기 볶음

화려하지 않아도 의미가 있는

음식을 하면서 이름 붙이는 것을 좋아한다.

음식과 관련 있는 학생들의 이름을 앞에다 붙여 부르는 식이다.


예를 들면 감자볶음을 승아가 좋아해서 승이 감자볶음, 파닭이 메뉴였던 날  여자 친구가 아파서 못 오니 그 몫까지 먹겠다고 말하고는 2인분을 가져갔는데 조금 뒤에 여자 친구가 등장해서 한바탕 웃었던 일로 파닭은 한이 파닭, 달걀말이만 있으면 무조건 좋다는 건이 덕에 건이 달걀말이, 국수는 몇 그릇이라도 먹을 수 있다는 경이 이름을 따서 경이 잔치국수,  빈이가 하숙집에서도 스테이크가 먹고 싶다는 바람에 어설픈 솜씨로 만들기 시작한 빈이 스테이크 등등 이렇게 이름을 지어 부르면 학생들도 오래 기억되고 그 당시 있었던 즐거운 일들이 기억되어 행복한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게 된다.



미역줄기 볶음의 이름은 진이 미역줄기 볶음이다. 작년까지는 그냥 미역줄기 볶음이었는데 올해 이름이 생겼다.

진이 미역줄기 볶음 만들기는 아주 간단하다.


준비물: 미역줄기 한 움큼, 당근 채 썬 건 아주 조금, 마늘, 식용유 한 스푼과 들기름 한 스푼, 다시다 한 꼬집, 그리고 통깨 한 수픈.


소금을 흠뻑 쓰고 있는 미역줄기를 물에 헹군 뒤(미역에 간기가 조금 있어야 맛있다) 끓는 물에 데쳐서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준다.

웍에 통깨를 뺀 나머지 재료를 모두 넣고 훽훽 볶아주고 진이 얼굴 생각하며 통깨를 뿌려주면 끝이다.

엄청 쉽다.  맛도 좋다. 몸에도 좋다. 무엇보다도 값도 싸고 만드는 과정이 너무 쉽다.


1월 임용고시 최종 합격자 발표가 있고 며칠 후 진이로부터 문자가 왔다.  집을 떠나서 사는 동안 좋아하는 미역줄기 볶음  못 먹어 아쉬웠는데 매식집서  가끔씩 미역줄기 볶음을 먹게 돼서 너무 즐거웠고 이모가 해주신 맛있는 밥 먹으며 힘내서 공부하여 합격하였노라 는 내용이었다.


와^^ 합격했구나 잘했다 핸폰을 진이 얼굴인양 처다보며 축하한다고 잘했다고 좋아하다가 순간, 진이가 좋아했던 음식이 미역줄기볶음이였단 말이지 뭔가 섭섭하였다.

성격도 좋고 밝은 얼굴에 인사도 잘하고 뭐든지 잘 먹었는데 미역줄기볶음을  좋아한단 말을 들은 기억이 없고 쉽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좀 더 화려했던 나름 고급진 음식을 좋아했다고 말했다면 '그럼 그렇지 내가 음식에 공을 들인 보람이 있어', 하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문자를 다시 보았다. 3학년까지 집이 멀어서 자주 가지 못했고 미역줄기볶음 먹을 기회가 없었다는 말이었다.  4학년땐 우리 집서 밥을 먹으며 집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 달래게 되었다는 말로 읽혔다.  아 맞아 다른 것들이야 식당 가면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는데 미역줄기볶음만 사 먹기는 그랬겠구나 이해를 하고는 마음이 즐거워졌다. 그래서 미역줄기 볶음에 진이 미역줄기 볶음이라고 이름 붙였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리운 것, 진이에게 우리 집이 그런 곳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이웃 식당의 언니가 내게 "아까운 기술로 공인중개사 계속하면 이쁜 옷 입고 손에 물 안 담그고 훨씬 모양새가 나는데 왜 이 고생하는 거냐" 고 물으셨었다. '식당 할 사람처럼 생기지 않았다고 어려운 일 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게 말이죠, 부동산 거래라는 것이 양 당사자간에 이득을 얻고 손해가 나지 않으려는 틈에서 일을 하는 거라 힘들었어요. 화려하지 않아도 지금이 좋아요. 맛있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있고, 밥 잘 먹고 시험 잘 봤다고 문자도 보내주고 고맙다고 인사오고 가끔 이모 보고 싶다는 우리 학생들 있어서 이 일이 훨씬 보람되고 좋답니다" 라고 답해드렸다.

그리곤 내 사는 모습이 수수한  미역줄기 볶음을 닮았단 생각을 하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웃었다.


그날 문자 받고 미역줄기볶음을 묵상하느라 축하인사를 맘껏 못한것 같아서 큰소리로" 축하한다. 진아!" 라고 힘있게 외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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