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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Oct 23. 2021

나의 울음에 대한 반감

아버님의 얼굴을 입관식에서 뵈었다. 8월 한방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거처를 옮기시기 전 면회를 다녀온 후 두 달 만이다.

입관을 돕던 장례식장 직원이 인사를 하시라는 말에 아들과 딸들과 아버님의 동기간들이 몸을 어루만지며 잘 가시라는 배웅을 하는데 큰며느리인 나의 한 손은 얼굴을 한 손은 가슴에 대고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병원으로부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도 나오지 않았던 눈물이었다. 마지막 순간에도 내 마음은 거기까지인가 싶은 생각에 이르자 가슴이 아팠다. 죄송해요, 잘 못했어요, 진심을 다하지 않았어요, 그런 말들이 속에서 치밀고 올라왔다. 용서를 빌고서야 겨우 손이 뻗어져 아버님의 팔을 잡을 수 있었다.


시골집에 홀로 사신지 4년이 되셨다.

매주 자식들이 순번을 정해서 찾아뵈었다.

형제들이 그런 결정했을 당시 남편이 내게 전한 말은 짧았다.

 "그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첫해는 김치나 밑반찬 고기류와 국을 일주일 분량으로 준비해서 보내거나 동행을 했었다. 해가 갈수록 준비하는 내용이 단순해졌다. 한 달 전에 가져다 놓는 반찬이 냉장고에서 나와 식탁 구경을 한 흔적이 없는 상태로 있다가 곰팡이 피는 게 일쑤였기 때문이라는 것과 아버님이 반찬을 만들기도 하시고 드시는 음식이 단조로운 탓이라고 핑계를 댔다.


우리가 당번인 어느 날 남편이,

"당신이 한 게 뭐가 있냐."라고 화를 냈다.

"잘한 게 없지만 안 한 게 뭐냐?"라고 대꾸를 했다.


입관을 마치고 한 시간쯤 지난 후 남편이 내 얼굴을 보았다.

"얼굴이 왜 그래? 잠을 못 자서 그런 거야?"

"외숙모 울어서 그래요." 아무 말 못 하는 내 대신 조카가 변명을 해주는데 얼굴을 감추고 싶었다.


아버님은 어머님 곁에 묻히셨다.

15년 전에 먼저 떠나신 어머님은 추모공원으로 모셨다. 그게 유언이었다. '살아서 시집살이가 고달프고 힘들었다. 죽어서는 자유롭고 싶으니 선산이 아니라 공원묘지로 보내달라.'


날씨가 참 좋았다. 하늘은 깨끗했고 볕은 따뜻했다. 환송하며 부르는 노래 속 '천국 문 앞에서 기다린다'라는 대목에서 입꼬리가 올라갔다. 먼저 가신 어머님과 시동생이 아버님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상상됐다. 오래 기다리고 계셨을 다른 가족들이 마중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행복하다는 감정이 들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남편에게 아버님께 잘하지 못한 거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울면서 내 울음에 반감이 갔다고, 자기변명의 울음이고 바삐 산다는 이유로 도리를 못한 핑계고 자기 설움의 울음이라는 것 내가 알아차렸다는 말을 전했다.

울음에 자격을 갖추려면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것을 아버님을 보내드리며 겨우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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