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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Nov 13. 2021

발신자, 울친정엄마박*희여사

엄마가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셨다

침대 안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벌써 일어날 시간이지만 토요일이니까 조금 더 게으름을 부리고 싶었다.

그때 울리는 전화벨,

꼼지락 거리던 발가락에 힘이 빠지고 평화를 방해하는 발신자를 잠시 원망하다 벨이 두 번 더 울리고서야 핸드폰을 보았다.

눈이 반짝 떠졌다.

발신자가 '울친청엄마박*희여사'다.

머릿속에서 불이 환하게 켜지고 기분도 반짝거리며 행복해졌다.

"어, 엄마! 알았어요. 오후에 갈게, 필요한 거 말씀하세요, 베지밀? 네~, 이따 봬요~"


엄마는 핸드폰이 있으나 사용하지 않으셨다. 여러 해 전에 아버지께서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잠깐 사용하신 게 전부다. 들일을 하면서 핸드폰을 챙기는 것이 번거로워 집에 두고 다니셨고 집안에서는 집 전화기가 있으니 사용할 일이 없었고 외출을 하실 때는 쓸 일이 없다며 들고 다니지 않으셨다. 엄마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면 전원이 꺼져 있다는 낯선 기계음의 응대만 있었다. 그래서 엄마와의 통화는 이른 아침이나 밤늦은 시간에만 가능했다.

그런데 엄마가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셨다. 그것도 집안에서.


평소처럼 집 전화로 전화를 하신 거였다면?

바빠서 못 간다고, 오랜만에 둘째가 집에 온다고, 토요일엔 시장도 가야 하고..... 등등 핑계를 댔을 것이다.

집 전화기든 핸드폰이든 무슨 상관이냐고, 엄마가 전화하신 거면 되는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자매가 아니면 모르는 그것이 있다.


아픈 아버지 대신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했던 엄마는 일중독에 빠져 있다. 눈만 뜨면 일을 하신다. 잠시도 가만히 앉아 쉬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어쩌다 자식들이 집에 가도 엄마는 밖에 계신다. 핸드폰이 엄마 수중에 없는 이유도 일 때문이다. 일하다 전화를 받으면 일이 방해되고 늦어지고, 몸에 지니고 다니려면 거추장스러워 싫다고 하셨다. 여든도 훨씬 넘은 나이에 허리도 기역자로 구부러져 똑바로 서 있을 기력조차 없으면서 끝없이 있을 하신다. 우리 자식들뿐만 아니라 엄마 형제들까지 엄마의 일 중독을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걱정을 하는 지경이다.


봄에 파종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엄마와의 실랑이가 시작된다.

엄마 먹을 만큼만 심으시라, 땅을 놀리면 안 된다.

나물은 뜯지 마라, 지천으로 있는 나물 그냥 두면 아깝다.

집 주변의 옻나무는 베어내자, 옻순 값은 좋아서 돈도 제법 살 수 있다.

하지 마시라, 없애라, 제발 쉬시라 그러다 지치면 우리도 힘들다고 투정을 하고 나중에는 엄마 꺼 하나도 안 가져다 먹을 테니 심지 마시라고 단호하게 말하지만 마음만 상할 뿐 엄마의 상황은 변한 게 없었다. 아니 더 힘들어졌다.


그러시던 엄마가 지난 추석부터 바뀌는 게 보였다.

큰언니와 식탁에 앉아 이야기하는데 엄마가 옆자리에 앉으셨다. 아버지께서 뭐하냐고 물으시니 딸들이랑 이야기하려고 하신단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어떻게 찍느냐고도 물으셨다.

언니가 사진을 찍고 저장하는 방법을 천천히 설명해드리고 엄마가 직접 찍고 저장하는 방법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식탁에 앉아 엄마가 학습으로 찍은 사진을 보며 잘 나왔네 못 나왔네 다시 찍어보시라 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그날 밤에는 마당에서 7년 전에 사다 두었던 그릴을 꺼내 숯불을 펴고 고기와 새우를 구워 먹었었다.

이 그릴은 7년 동안 딱 두 번 사용했다. 시골의 낭만과 여유를 느끼며 사용하자고 사다 놓은 그릴을 꺼낼 기회가 없었다. 늘 일은 오밤중에 끝나 불 피우고 고기 굽는 것은 번거로운 또 다른 일이 될 수밖에 없어 그릴은 그냥 창고에 쳐 막혀 있었던 것이다.  


하여튼 엄마의 일하는 모습이 안쓰러운 것을 지나쳐 속상하고 화가 나서 웬만하면 친정집 출입을 삼가겠노라고 선언을 한 후에도 엄마는 잠깐 다녀가라, 감자 캐 놓은 것 가져가라, 호박이 많이 열렸다, 풋고추 안 필요하냐는 등의 전화를 하셨고 나는 바빠서 갈 시간이 없고 시장에서 사 먹을 테니 이제 그만 심으시라고 매정하게 말을 했었다.


울엄마박*희여사의 발신자로 통화 후 베지밀을 두 박스 사서 친정에 갔다. 엄마는 집에 계셨다. 두 분이서 양념치킨을 드시고 계셨다. 엄마 얼굴이 여름보다 환해지셨다. 내가 손으로 엄마 얼굴을 만져보며 웃었다.

"좋네, 엄마가 집에서 쉬고 계시니까 얼굴도 예뻐 보이시네."


저녁에 둘째언니와 통화를 하며 베지밀이 필요하셨다는 말을 전했다.

"에고, 베지밀이 떨어졌었구나, 택배로 보내드려야겠다."는 언니의 말을 잘랐다.

"놔둬, 엄마가 전화하시면 그 핑계로 한번 더 찾아뵐게."

언니와 통화를 하면서도 계속 웃음이 나왔다.

울엄마박*희여사! 발신자는 우리 모두를 웃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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