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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Jan 05. 2022

가방을 잃어버리는 아(이)들

잘 두고 다녀온 거예요

아들 쭌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 머리가 너무 아파서 학원에 못 갈 것 같아요.

그럼 병원에 갈까? 

아니에요, 그게 아니고 가방을 잃어버렸는데 운동장에서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너무 힘들게 돌아다녀 머리가 아픈 거라 집에서 쉬면 돼요.


아들에겐 쉬라 말하고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학교에 분실물을 보관하는 곳이 있는지 여쭤보았다. 

선생님은 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웃음을 터트리셨다. 

"무슨 신나는 일이 있는지 종례가 끝나자마자 몸만 교실 밖으로 튀어나갔어요. 가방은 책상 위에 잘 두고 갔으니 걱정 말고 내일 학교 오라고 전해주세요."

그날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다고 했다. 당연히 가방을 들고나간 줄 알았고 친구들 가방 있는 곳에 자신의 가방도 있을 줄 알았는데 없으니 운동장만 몇 번 헛바퀴 돌다 지쳐서 돌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쭌이가 4학년 때, 새 아파트로 이사하고 며칠이 지난 아침 시간, 밖에서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숟가락을 던지듯 내려놓더니 방으로 후다닥 들어가 가방을 메고 현관으로 뛰어나갔다가 경보기가 오작동인 것을 알고 다시 뛰어 들어왔다. 저만 살려고 나간 거냐 물었더니 학교에 가야 하는데 가방을 두고 갈 수 없어서 그랬다나.  


다 큰, 몇 달 후면 어린 쭌이 같은 아이들의 선생님이 되실 학생들도 가방을 잃어버린다. 

식사가 끝나고 정리를 하다 보면 식탁 아래에 얌전히 누워 있는 가방이나 휴대폰 등을 볼 때가 있다. 가방은 출입문 옆 정수기 아래다 가져다 놓고 휴대폰은 배식대 옆 내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면 한 시간이나 늦어도 다음 식사시간 전에는 주인이 찾아간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다음 식사시간뿐 아니라 다음날이 되어도 가방을 찾아가는 사람이 없었다. 들어오는 학생들에게 저 가방이 누구의 것인지 물어도 본인 것이 아니고 누구의 것인지 모른다고 했다. 이틀째 가방을 열어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하려 했으나 책이나 노트 필통 등에 이름이 쓰여 있지 않았다. (왜 책에 이름이 없냐고 학생들에게 물으니 책 값이 비싸서 깨끗이 쓰고 다른 학생에게 팔기 위해서라고 했다.) 여러 학생이 함께 스터디를 하다가 남의 가방을 잘 못 들고 온 모양이라는 의견이 나왔고 급기야는 책가방 사진을 찍어 학교 커뮤니티 공간에 알리기로 했다. 

다음날, 학생 하나가 밥을 다 먹고 나가면서 조용히 말한다. 

"이모, 저 가방 제 거예요." 

"알았어." 나는 웃음을 참느라 더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세상에나, 이틀씩이나 가방을 보고도 본인 가방을 몰라 보다니, 혹시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거 아닐까.'란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아들의 어릴 적 아들의 선생님의 '잘 두고 갔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 학생도 가방을 잃어버린 게 아니다. 우리 집에 거주하는 학생이니 집에 두고 나갔다 온 것이다. 같은 집에 살고 있어 아무 때나 들고 가면 되는 거였다. 단지 이틀 동안 그 가방 안의 물건들이 필요하지 않았을 뿐이리라. 


가방을 잃어버리고 다니는 아(이)들 덕분에 아들의 어릴 적 생각이 났고 우리 부부는 그리운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한바탕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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