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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Jan 25. 2022

음치 가족의 따뜻한 노래

부모님 두분의 생신이 음력 12월 말경에 있다. 명절을 코앞에 두고 두 차례 따로 모이기 어려워 적당한 날을 잡아 함께 축하드리고 있다. 얼마 전에 결혼 60주년을 맞이하셨으니 이번엔 겸사겸사 부모님 앞에서 재롱을 피우기로 했다. 


우리 부부가 먼저 남행열차를 열창! 중간에 박자를 놓쳐 한 음절을 건너 뛰기도 했지만 무사히 '당신을 사랑했어요'로 끝나는 종착역에 도착했다. 뒤를 이어 손주 대표로 참석한 첫째 손주와 막내 손주가 노래를 부르고  바통을 이어받아 부모님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자 내 동생이 노래를 시작했다. 


첫 음절부터 박자가 무시되고 음은 오선을 이탈하다 4마디가 끝나기 전에 가사는 갈 길을 잃었다. 동생을 제외한 가족들이 웃음을 참느라 고개를 돌리고 입을 막았으나 결국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감출수가 없다. 동생도 제멋대로 떠다니는 음표를 붙잡지 못해 노래를 포기하고 말았다. 


겨우 웃음이 진정되자 동생이 다시 도전을 외쳤다. '그렇지, 틀렸다고 포기하면 안 되는 거.'라며 식구들이 응원을 했다. 안재욱의 '친구'를 부르겠단다. 잔칫날 부르기에 적당치 않아 보이지만 어차피 제 맘대로 부를 테니까 괜찮다.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이전 노래처럼 박자 무시하고 음도 이탈했다. 하지만 몇 마디가 지나면서 다른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줄어들고 1절이 끝나갈 즘엔 두 팔을 가슴께로 올려 손뼉도 치며 양옆으로 흔들고 있었다. 동생이 들고 있던 핸드폰에서 울려 나오는 반주가 아니라면 원래 그 노래의 음이 그런가 보다 생각했을 것이다. 제 감성에 취해 부르는 노래에 진지함이 더해져 그럴듯했다. 


간주가 나오자 둘째언니가 한마디 한다. 

"동생아, 이제부터 어디 가서 노래할 일 있으면 그 노래해라."


동생은 노래를 끝까지 불렀다. 

가족들은 즐겁게 노래를 감상했고 박치고 음치인 동생의 노래에 감동했다.


우리 남매들이 박치, 음치인 것은 유전이다.

아버지께서 끝까지 부를 줄 아는 노래는 단 한 곡이다. 아버지의 노래를 들어본 기억이 다섯 손가락을 다 채우지 못한다. 세 번째인지 네 번째인지의 기억도 20년은 족히 지났다. 남자들이면 다 알 것 같은 '사나이로 태어나서~'도 모르고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하는 드라마(온 가족이 즐겨보던) 주제곡도 모르신다.  첫 음절은 고사하고 중간 가사 한마디조차 기억이 없지만 아주 선명하게 알고 있는 단 한마디는  '제. 2. 훈. 련. 소!'로 끝나는 마지막 음절이다. 그러니까 그 노래는 군가다. 분명 아버지가 소속되었던 군부대의 지정곡 같은 그런 노래였을 것이다. 


박자나 음이 맞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이 노래를 아버지 맘대로 부르시는데 마지막 끝음절은 한 글자 한 글자마다 박력과 절도가 넘쳐 처음부터 박력 있는 군가를 들었다고 착각하게 만드셨다. 

음주는 중독 상태였던 아버지지만 가무와는 전혀 인연이 없으셨다.


하지만 엄마는 조금 달랐다. 여자는 편지만 쓸 수 있으면 된다는 외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글씨와 샘을 배우고 또 외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중퇴를 하셨다는데 그 짧은 학생 기간에 배운 동요나 가곡을 기억하셨다. 박자와 음은 엄마의 감정에 따라 편곡되지만 진심을 다하여 부르는 노래엔 원곡의 감성이 살아있다. 


동생이 제멋대로 편곡해서 부르지만 진심을 다하여 부르는 느낌과 원곡의 감성을 살려 노래하는 엄마의 편곡된 노래에서 전해지는 느낌은 당연한 소리겠지만 너무 닮았다. 


방 안에서 한바탕 '생신 축하쇼'를 끝낸 후 마당에 모닥불을 지폈다. 

자식들 곁에 엄마가 자리를 잡았다. 

"엄마 노래할까요?"

"생각나는 게 없다."

"괜찮아요, 나랑 부르면 생각날 거예요."

큰언니가 선창을 했다. 엄마도 노래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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