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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Feb 16. 2022

편하게 물어보셔도 됩니다

결과가 나왔습니다

몇 해 전,

임용고시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우리 가족은 남쪽 바닷가에서 여행 중이었다

바닷바람 소리와 겹쳐 미세하게 들렸지만 다행히 기다리던 문자 알림음을 놓치지 않았다.

"이모, 저 합격했어요. 교수님도 기적 같은 일이라고 하셨어요."

"어, 어, 어떡해, 흐, 흐, 너무 좋아! 진짜 좋아!" 손가락을 움직여 축하한다고 자판을 두드려야 하는데 영이가 앞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흥분된 말이 먼저 나왔고 떨리는 손을 진정할 수 없어서 통화 버튼을 눌러 큰 소리로 축하를 전해 주었었다.

영이는 워낙이 힘든 지역에 지원했었다. 임용고시 1차 합격자 1.5 배수의 뒤편에 있었고 처음엔 의기소침했으나 바로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2차를 준비했었다.

"이모 열심히 하면 되는 거죠! 그렇죠!, 기도해주고 계시죠, 저는 할 수 있죠." "그럼 당연하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잖니, 사람도 그런 사람을 돕게 되어 있어, 면접관의 눈에 네가 단연 돋보일 거야, 생각날 때마다 기도하고 있단다." 

그렇게 영이는 수시로 본인과  내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었고 그런 후에 전해진 합격 소식이라 더욱 기쁘고 행복했었다. 


올해도 우리 학생들의 임용고시가 있었고 당연히 합격자 발표도 했고 몇 명의 학생이 합격 소식을 전해 주었다. 다른 학생들의 소식도 궁금하지만 직접 물어보기는 그렇고 해서 식사 중인 같은 과 후배들에게 소식을 물었더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참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우리 집에서는 셋째 아이가 재수생 신분으로 수능을 치렀다.

대학을 꼭 가야 할 이유가 없다며 하고 싶은 것 하며 살겠다던 아이가 갑자기 대학을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건 고3이 되어서였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었다. 온라인 수업과 등교 수업을 몇 번 반복한 후에 수능을 치렀고 결과는 대충 4.5등급대로 보잘것없었다. 아이는 재수를 하고 싶다고 했고 부모인 우리는 "하고 싶으면 해라, 다만 두 가지는 약속해야 허락하겠다."라고 했다. 첫 번째는 집을 떠나 기숙학원으로 가는 것, 두 번째는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인정할 만큼 하는 것이다. 아이는 약속을 하고 1월에 기숙학원에 입소했다.

재수를 결정했다는 소식을 접한 지인들은 아이가 '재수를 원하냐.'라고 물었고 '재수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하는 거라던데.'라는 염려를 해주었다. 무슨 걱정을 하는지 모두가 다 아는 그것을 우리도 알고 보냈다. 


일주일에 한 번 허락된 5분간의 통화에서 아이는 열심히 하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고 했다. 나는 믿는다고 했다. 아이는 평소 책을 많이 보는 편이었는데 학원에서는 문제지의 지문 이외에는 읽을 것이 없어서 아쉽다고 했고 나는 비교적 긴 문장의 편지를, 읽고 있는 책의 내용들을 독후감처럼 써서 보내주었다.

그렇게 재수생활을 마치고 수능 당일 밤 기숙학원으로 아이들 데리러 갔을 때, 가채점표를 잊어버려서 결과를 확인할 수 없으나 걱정 마시라고 시험은 잘 봤다고 했다. 12월 수능점수가 발표되었고 1월 정시로 대학을 지원했고 결과도 나왔다.


재작년에 매식하던 졸업생이 금요일에 찾아왔다. 임용고시 합격자 발표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시험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어 후배 소식을 물었다.

"로이 어떻게 됐는지 혹시 아니?"

"열심히 했으니까 됐을 거 같긴 한데 소식을 못 들었어요."

"유독 궁금한 학생이 있는데 직접 물어보기는 그렇고, 그게 좀 그렇지?"

"합격해도 먼저 말하기가 좀 그런 게 있어요. 친구들 중에 불합격한 누군가가 꼭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발표전에 합격하면 프사를 파란색으로 바꿔 놓겠다고 말했었어요. 아, 그리고 어떤 애는 임용고시 끝나고 프로필에 '편하게 연락하셔도 됩니다.' 이렇게 써 놓았었어요."

"귀엽고 예쁘네, 직선적으로 말하기는 그렇고 암시된 말속에 느낌으로 알 수 있을 정도로 합격소식을 전하는 그 방법! 참 맘에 든다."

"합격하면 자랑하고 싶은 건 사실이잖아요."

"그래, 맞아, 우리 막내도 이번에 수능 봤는데, 그러니까 편안하게 물어보셔도 괜찮은 상황이야. 예쁘고 기특해서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었단다. 장학생이라네."



4,5등급이 어떻게 1,2등급 대가 나올 수 있냐는 질문에 아이가 한 대답이다.

엄마, 학원비가 일류대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간 사람들이 받는 금액이랑 비슷하잖아요. 내가 공부를 안 해 가고 싶은 대학도 못 갔으면서 그렇게 큰돈을 쓰는 게 한심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최소한 그런 기업에 지원할 정도의 대학은 가야 되겠다고 마음먹고 공부했어요. 그래서 죽을힘을 다한 건 아니지만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만큼은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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