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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May 17. 2020

아들 보는 날! 일찌감치 복날!

삼계탕 먹고 싶어요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는 둘째가 2월 이후에 집에 오지 못했다. "보고 싶은 거 더 못 참겠으니 오라"는 나의 말에  내려왔다. 몇 달 만에 보는 아들에게 무엇을 해먹일까 생각하다가 먹고 싶은 게 뭐냐고 전화로 미리 물었다. 고기가 먹고 싶단다. 콕 집어서 무슨 고기인지 말해보라 했더니 '삼계탕'이란다.


아들 셋 중 둘째는 아기 때부터 조금 달랐다. 차를 태워서 어디를 갈라치면 저 불편한 것을 참지 못해 발버둥을 치며 울어대는 바람에 더 편안한 자세를 만들어 주느라 많이 신경을 써야 했었고 글씨를 배우기 시작한 후로는 필기감이 좋은 연필이나 펜을 찾아냈으며 마트에서 과자를 사도 가장 비싼 것을 잘도 골라와 "부모 수준과 다르게 본능이 고급진가" 했는데,


아들의  본능과 다르게 우리의 사정은 출산하자마자 IMF를 맞아 가장 저렴한 분유를 먹였고, 백일사진이나 돌사진은 찍어 주지도 못했으며, 옷도 형의것 물려 입혀 키웠다.


여하튼 아이는 본능대로 고급지게 커주었다. 한참 유행하던 영재교육도 받고, 툭하면 받아오는 상장은 온 집을 도배해도 될 만큼 많았고 귀티가 난다는 말을 종종 들었는데 그게 대놓고 자랑스러웠다.


반면 부모의 형편은 별로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노트북이 필요해  사주어야 하는 상황인데도 형편이 여의치 않아 아빠가 사용하던 중고를 주고, 대학을 입학할 땐 제 몸을 겨우 누울 만한 좁은 방을 구해주는 처지로  아이의 고급진 본능을 채워주지 못했었다.


어느 날  아들의 새로 산 가방에 마음이 상해버렸다. 너무 허름해 보이는 가방을 메고 단정치 못한 모습을 보며 왜 그러고 다니냐고 면박을 주고 말았다.


"아껴 써도 뭐라 한다"며 대답을 하는 말들을 내 맘 상해서 더 듣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가방을 새로 구입해 주었다.  생각해보면 좋은 변화일 수도 있던 아이의 행동에 마음이 상한 이유는 아이 때문이라기보다는 본능대로 살지 못하게 만든 우리 형편 탓이지 싶다.


여러 달 만에 만나는 아들을 위해 삼계탕용 닭을 사고 어떻게 더 맛있게 해 줄까 고민하다 아들에게 또 전화를 걸었다. "그냥 삼계탕 말고 전복 삼계탕을 할까"라고 물었다.  "에구머니나 그렇게 고급지게요" 목소리가 즐겁다. 그 목소를 들으며 내가 더 즐거워졌다.


아이 올 시간에 맞추어 삼계탕을 끓이는데 아들이 "엄마"를 부르며 들어왔다. 주방에서 팔을 벌리고 튀어나가니 저도 팔 벌리고 다가와 안고는 등을 토닥거려준다. 내 새끼가 나보다 훨씬 커서 내가 안았다기보다 안겼다는 느낌이 드는 그것이 좋다. 듬직하고 감사하다는 그런 생각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부모의 형편을 이해하고 엄마보다 더 깊은 맘을 가진 아들이다 싶어 기특해진다. 세 달 만에 만나는데 삼 년 만에 만나는 것처럼 마음이 유난스럽다.


삼계탕 고급지게 끓이기

준비물: 삼계탕용 닭, 각종 부재료가 들어있는 팩 하나 구입해 풀어놓고, 마늘 많이, 인삼이 냉동실에 보관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없어 삼대신 홍삼액 몇 포, 그리고 닭보다 비싸고 한 덩치 하는 전복, 참쌀 약간

삼계탕 부재료들

재료들을 깨끗하게 손질한다. 전복은 칫솔로 더 깨끗하게 씻어준다. 찹쌀 씻어 30분 정도 불려준다.

닭 배속에 마늘과 대추,찹쌀을 넣고 두 다리를 앞으로 모아 풀리지 않게 꼬치로 찔러 둔다.


냄비에 물을 넣고 끓기 시작하면 닭과 재료를 넣고 또 다시 끓어오르면 약불로 줄이고 닭이 완전히 익을 때까지  1시간가량 기다린다. 그리고 간간히 위로 올라오는 거품을 제거해 주면 더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식구수대로 홍삼 4포와 닭보다 더 비싼 전복은 먹기 5분 전에 넣고 끓이면 고급진 전복 한방 삼계탕이 완성된다.

완성된 삼계탕



1인분씩 뚝배기로 옮겨 한 번 더 끓인 후 아들 앞으로 놓아주었다. "와 맛있어요! 전복도 맛있어요! 오랜만에 집에 오니 더 맛있어요!" 맛있어요를 노래하듯 트리플로 불러주고는 정말 맛있게 먹는다. 집 떠나 생활하니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대로 못 먹는다는 둥 김치가 떨어졌는데 너무 비싸서 못 사 먹겠다는 둥 오늘이 복날같다는둥 신나서 이야기를 한다.


 군대생활까지 합쳐 객지 생활 6년 만에 아이는 정말이지 많이도 털털해졌다. 까탈 진 것도 없어졌고 고급진 것도 없어졌다. 부모의 형편을 알아차리고  점점 검소해졌다. 내 마음은 아이가 너무 일찍 철든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아이 때처럼 엄마 형편보다 더 좋은 거 요구하면 무리해서 들어주고 싶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심한 거 말고 삼계탕에 전복 올려 주는 정도면 좋겠다. 아마도 아이는 "그게 더 힘들다!"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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