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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May 24. 2020

신발 주인들의 이야기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학생들

추운 날엔 과잠에 운동복 바지 그리고 슬리퍼, 더운 날엔 티셔츠에 운동복 바지 그리고 슬리퍼!

임용고시를 준비 중인 우리 집 밥을 먹는 학생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여학생이든 남학생이든 비슷하다.


서너 명이 무리를 지어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려다 신발장 앞에서 서성거리는 것이 보인다. 하던 일을 멈추고 학생들에게 다가가 "신발이 바뀌었구나 걱정하지 말고 칠판에 써 놓고 바뀐 신발을 신고 갔다가 저녁시간에 오면 찾을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해준다.


오늘의 메뉴를 써 놓는 칠판 아래쪽에 "아디*스 까만색 슬리퍼가 바뀌었습니다." 기록해 놓고는 반신반의한 얼굴로 돌아간다. 대부분이 저녁시간 아니면 다음날에 밥 먹으러 들어오면서 칠판의 글씨를 지운다. 확인하지 않아도 안다. 자신의 신발을 찾은 것이다.


학생들의 생활은 규칙적이다. 오는 시간에 온다. 일찍 오는 학생들은 점심이든 저녁이든 일찍 온다. 늦게 오는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정해놓은 그 시간에 온다. 그래서 문 열어 주는 학생, 문 닫아 주는 학생이라는 별칭을  부르는데 그들은 분명히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리란 것을 미리 짐작한다.  자리도 본인이 처음 앉았던 자리가 자기 자리인 줄 안다. 가끔 바뀌는 경우도 있지만 신발처럼 다음 식사시간엔 그전의 습관대로 원래의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신발을 바꾸어 신고 간 학생이든 바뀐 신발을 신고 간 학생이든 평소 오던 대로 도착하면 자신의 것을 찾는데 문제가 없다.


여러 날 전에  문 닫아 주는 학생이 밥을 먹고 가려다 말고 신발장 앞에 서있다. 좇아나가 "신발이 바뀌었나 보네, 걱정 말고 칠판에 적어놓고 바뀐 신발 신고 갔다가 다시 신고 오면 바로 찾을 수 있을 거"라 말해 주었다. 학생은 반신반의한 얼굴로 칠판에 적어 놓고 고민하는 눈치가 보였다. 혹시 자신이 신고 가버리면 못 찾을 수도 있으리라는 걱정을 하는 것이라 눈치채고 우리의 슬리퍼를 내주니 그것을 신고 갔다가 다음날 들어오면서 칠판 위의 신발 찾는 '알림'을 지운다.


찾았는지 물으니 찾았단다. 학생들은 처음 경험이라 걱정할지 모르나 우리는 걱정하지 않는다. 그동안 그들의 행동에 규칙적인 생활 보아왔고 그 규칙적 생활을  따라 신발도 제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슬리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떠오르는 무리들이 있다.

매식 생으로 우리 집 밥을 먹는 체육교육과 남학생 무리가 유난스러웠다. 들어와 밥을 먹고 나갈 때까지 모든 행동이 도드라져 보였다. 일반적인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먹성을 생각하면 바로 고개를 끄덕일만한 그런 먹성이어서 그들이 배식대를 지나가면  음식을 다시 세팅해야 했다. 먹는 것이야 그렇겠지!라 이해되지만 돌아가다 말고 신발장 주변에서 한바탕 시끄러웠다. 전실에 있는 저장용 냉장고 문도 열어 보고, 냉장고 위를 바라보기 위해 펄쩍펄쩍 뛰기도 하였으며 냉장고 아래를 쳐다보느라 바닥에 엎드리기까지 하였다.  처음에 뭔 일이냐고 놀라서 좇아가 보면 신발이 없어졌단다. 바뀐 게 아니라 없어진 거다.  늦게 들어오던지,  일찍 나간 학생이 그 잠깐의 사이에 슬리퍼를 감추는 장난을 친 것이었다.


"만약 신발이 냉장고 들어 가 있는 날에는 너희들 모두 우리 집 출입금지야!"라고  야단을 쳤다. 다행히도 철없이 냉장고에 신발을 넣는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신발이 사라졌다고 저장용 냉장고 문을 열고 펄쩍거리고 바닥을 뒤지는 모습을 흔하게 보았다. 대부분 신발은 현관문 밖에서 나왔고 휴지통에서도 나왔고 어느 날엔 먼저 나가버린 학생이 들고 저만치 뛰어가 있기도 했었다.


그렇게 짓궂고 요란스러운 장난질을 하던 그들이 선생님이 되면 아이들이랑 잘 놀아주겠구나 생각은 하였으나, "대학교 4학년 행동이 초등학교 4학년 같다고 제발 좀 그러지 마라" 싫은 소리 하는 나를 어려워하지 않고 친근하게 대하며 1차 임용고시를 보는 전날까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는 규칙적인 행동을 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모두 각자 원하는 지역에 합격을 했노라는 좋은 소식을 들었다.


현관에 놓인 신발들을 본다. 신발이 주인들처럼 여러 이야기를 담고 여러 모양으로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이 슬리퍼다. 신발장에 가지런히 놓여있기도 하고, 앞발 뒷발이 걸어온 순서대로 있기도 하고 나갈 때를 대비해서 방향을 바꾸어 놓은 것도 있다. 모두 자신만의 이야기를  잘 만들어 가고 있다.  더워지려는 요즘 파이팅하시라 응원하며 슬리퍼 신발들 한번 처다보고 안에서 밥먹는 학생들 한번 바라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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