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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May 16. 2020

16년 된 송화가루

시어머니를 그리워하다

며칠 전 냉장고의 엔진 소리가 이상하게 들리더니 전원이 켜져 있어도 냉기가 나오지 않았다. 15년이나 사용했으니 고장 날 만도 하다. 그래서 새것으로 바꾸고 싶었지만 요즘 경기가 덜 좋은 관계로 A/S를 받아보고 비용이 많이 들면 그때 바꾸기로 하였다.


A/S 오기로 약속된 날 아침에 냉장고 속을 비우는데 냉동실에서 노란색 가루가 든 봉지가 눈에 보였다.

아!..... 어머니께서 주신 16년 된 송화가루다.!

16년 된 송화가루

어머니는 15년 전에 돌아가셨다. 이 냉장고를 선물받기 한 달 전이었다. 3년간의 암투병을 하시다 그해 3월 15일에 세상을 떠나셨다. 송화가루는 그보다 1년 전 거동이 가능하실 때 과수원 근처 산에서 직접 수집하신 것을 "귀한 것이다. 꿀에 재서  숟가락으로 떠 먹어도 되고 동그랗게 환을 만들어서 먹어도 된다"라며 나에게 전해 주셨다. 가르쳐 주신대로 해먹을 자신은 없었으나 힘겹게 수집하신 것임을 알기에  감사하다며 들고 왔었다.

그리고 언제든 한번 만들어 보리라 마음만 먹었지 실제 입으로 먹을수 있도록 만들어 지지 못하고 냉동실 자리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머님은 큰며느리인 나를 이뻐해 주셨다. 원래 자식 사랑이 많으셨고 귀하게 여기시는 분이셨다. 시골일이 한참 바쁜 때 뭐라도 도와드리려 주말에 찾아뵙고 "뭐할까요" 여쭈면 "내 새끼 일주일 내내 일하다 내려왔는데 뭘 시키냐, 너희들 덕분에 나도 오늘은 쉬련다." 그러셨다. 당신 자손들이 집에 오면 잘 쉬었다 가기를 바라셨다.  연약하고 조용하신 어머니는 당신보다 10배는 더 정정한 시할머니의 시집살이로 목소리조차 낮아져 있으셨다. 자식들의 차를 타고 밖의 세상으로 나가시는 것을 즐기셨다. 무엇을 구경한다거나 별일이 없어도 당신 사시는 곳을 벗어나 다른 공기를 접하실땐 "아 좋다, 난 이렇게 차 타고 다니는 게 좋다"라고  그저 좋다!고 말씀하셨다.  


18년전 내가 셋째 아이를 출산했고 산간은 어머니께서 맡으셨다. 힘드실텐데 그 일을 하고 싶어 하셨다.  비좁은 집에 어머니의 쉴 곳이 마땅치 않았었는데도 "내 새끼 집에 있으니  좋다"고 하셨다. "아무 때나 잘 수 있고 이쁜 내 새끼를 계속 보고 있으니 천국 같다"고 하셨었다. 그래서 나중에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면 우리집에서 몇 달 사시기로 약속했었다.


산후조리를 해 주신 바로 다음 해 어머니는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혈액암을 진단받으셨다. 우리는 이전의 아파트보다 평수가 큰 아파트 분양권을 매수하였다. 어머니는 병환 중에도 집 밖의 일들을 하셨다. 안된다고 아무리 말려도 집에 있는 것보다 밖이 편하다고 하셨다. 매년 5월엔 송화가루를 수집해 다식을 만드셨는데 진단이후에도 그 일을 계속하셨다. 뿐만아니라 간간이 밭일도 하셨다. 아마도 시할머니와 함께 있는 집에서 맘 편히 눕지 못하시는 며느리의 사정으로 그리하셨을 것이라 짐작을 하였었다.


마지막 일년동안 병은 악화되셨고 거동이 어려워지셨고 몸은 여위어 마른 장작처럼 보였었다. 아파트는 건축이 완료되었고 그동안 살던 작은 아파트의 매매계약도 이루어졌다. 그렇게  우리의 이삿날은 4월 중순으로 정해졌다. "어머니 언능 나아지셔야 해요 조금만 더 지나면 우리 이사해요.  저희 집서  같이 살아 보기로 했잖아요"라고 말씀드리면 기운 없는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만 보셨다. 드시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마시는 것조차 어려워지셨다. 어머니의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졌고 3월 15일에 소천하셨다.


그토록 좋아하셨던 아들네 집! 곧 이사할 새집 구경도 안 하시고 천국으로 떠나셨다. 우리는 계획대로 새집으로 이사를 했다. 시누이가 집들이 선물로 냉장고를 사주시며 "이건 엄마 몫이다"라고 하셨다. 무슨 뜻인지 묻지 않았다. 묻고 싶지 않았다. 그저 "엄마 몫이다"란 말이 소중하기만 하였었다. 그 후로 우리는 두 번 더 이사를 했다. 이사할 때마다 냉동실의 송화가루를 꺼내서 쳐다보며 이것으로 송화다식을 만들어볼까를 생각했었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식 틀도 없거니와 봉지를 열기만 해도 가루는 날아서 주변에 노랗게 내려앉았다. 그 가벼운 송화가루를 어찌해볼 수가 없어 봉지의 입을 묶고 다시 냉동실 깊숙이 밀어 넣었었다. 워낙이 깊숙이 밀어 넣은 송화가루여서 냉장고 전체 청소를 할 때가 아니면 잊고 지냈었다.


15년 전 시누이가 엄마 몫이다라고 사주신 냉장고가 고장 나서 만난 16 된 송화가루!

아마 몇 번의 이사를 더 한다 해도 버리지 못할 것이다. 이번에도 봉지를 열고 먹을 수 있을까를 생각만 하였다.봉지를 건드리기만 해도 노오란 가루가 사방으로 날렸다. 봉지의 입을 묶어 냉동실에 다시 넣었다. 냉장고를 바꾸지 않은것은 참 잘한 일이다. 하마터면 어머니 몫의 냉장고를 보낼뻔 했다. A/S가 되는 순간까지 고쳐서 사용하리라 생각했다.

 

노오란 송화가루는 처음 가져왔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사실은 내 마음대로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을 했다. 시간이 오래 지나서 냉장고는 버려질지라도 송화가루는 냉동실 한켠을 차지할 것이다. 아마 내가 어머님의 나이가 되어도 별로 달라진것 없이 그자리에 있을듯 하다. 그렇게 그 자리에 있다가 이번처럼 어머니를 그리워하게 해주면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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