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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Jun 11. 2020

이름값 하는 그대들

이모의 아들, 아저씨의 딸

재작년 12월에 매식 신청자의 이름을 보고는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우리 큰아들과 같은 이름이다. 매식 신청 확인했다고, 그런데 이름이 우리 아들과 같다고 그래서 더 반갑다고 답문자를 보냈다. 아 그러냐고 신기하다고 본인도 반갑다고 또 답변이 왔다.  


학생들을 맞이하는 첫날! 칠판에 안내문을 적었다. "필요한 만큼 음식을 준비하신(우리 집은 밥과 반찬은 자율 셀프 배식이다) 후 이모와 눈을 맞추고 이름과 과명을 알려주세요."

한 사람씩 국을 퍼 주면서 눈을 맞추고 학생들이 알려준 이름과 과명을 내 입으로 한 번씩 불러보며 착오가 없는지 확인한다.


"체육과 *우입니다." "어서 와요~우리 아들이랑 이름이 같은 학생! 반가워요, 한자는 어떻게 쓰시나? 집이 어디신가?" 때아닌 호구조사를 했다. 집은 서울이고 한문으로 무슨자에 무슨자를 쓴다고 대답을 하는데 한자도 똑같다. 뒤에서 기다리는 학생이 있어서 맛있게 먹으라는 말로 첫날 인사를 마무리했다.


그날부터 그 학생이 더 이뻐 보였다. 아마도 매식 신청 문자 속 이름을 본 그 순간 더 이뻐하기로 예정하였을 것이다. 나는 그 아이를 부를 때면 꼭 우리 *우라 했다. 인사를 나눌 때 더 다정하게 대했다. 국을 퍼 줄 때도 정성이 더 갔다. 고기를 더 넣어준다거나 국물을 풀 때 국자 가득 푼다거나 처음엔 의식적으로 한 행동이 나중엔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그 학생도 우리 아들처럼 다정하게 행동했다. 일찍 오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홀의 불을 켜준다거나 오늘의 메뉴판에 메뉴를 적어주는 행동을 하며 즐거워했다.

우리 *우는 임용고시를 앞두고 불안해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걱정하지 말라고 여기서 오래도록 학생들 봐 왔는데 일등으로 오는 학생들은 모두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다고, 열심히 했으니 자신을 믿으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럼 응원해 주셔서 고맙다고, 꼭 합격해서 찾아오겠다고 웃으며 응답했었다.

우리 *우는 원하는 지역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을 한 후 내게도 합격했다는 소식도 전해주었었다.



옥이는 2학기가 되어 우리 집 밥을 먹게 되었다. 다복한 가정의 막내딸 같은 말투를 지닌 학생이었다. 어느 날 밥을 먹고 돌아가려다 말고 아저씨 이름이 자신의 아빠와 이름이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서 머뭇거렸었구나 생각하니 너무 사랑스러워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보령군이란다.  그러냐고 우리 부부가 처음 만난 곳이 대천해수욕장이라고 반갑다고 했다. 옥이의 아빠랑 아저씨 이름이 같으니 아저씨 딸이라고 내가 웃으며 말했더니 환하게 웃으며 좋아했다. 그날부터 옥이는 남편의 딸이 되었다. 옥이가 들어오면 더욱 다정한 목소리로 오서 오라고 말하고 우리 옥이라고 부르고 어느 땐 뭐 좋아하냐고 물어보고 좋아하는 것 해주고 싶어 했었다. 그럼 다 맛있다고 다 좋아한다고 히히 웃으며 대답해 주었었다.


다른 학생들에 비해 함께 한 기간이 짧아 아쉬웠었다. 떠나가는 날 "이거요 두 분이 커피 드실 때 쓰세요" 손수 실뜨기질로 만든 컵받침을 선물해 주었다. "우리 딸 이제 못 봐서 아쉽다, 이모가 한번 안아보자" 호칭이 엉망이지만 정만큼은 가족이 되어버린 옥이를 마지막에 꼭 안아주고 보냈었다. 워낙이 성실했던 옥이도 당연히 원하던 지역에 합격하였다.



학생들의 이름을 들으면 그 아이가 어떠한지 모르면서도 이른 정이 갈 때가 많다. 작년에 이뻤던 학생과 이름이 같아서, 우리 조카랑 이름이 같아서, 내가 좋아하는 동생과 이름이 같아서, 성실하게 사는 친구랑 이름이 같아서, 이름이 같다란 것만으로 신청 문자의 이름을 보는 순간부터 이 아이가 어떠할까 궁금하고 얼굴을 대하기도 전에 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렇게 기대하다가 만난 이름의 주인들은 그 이름값을 하였다.


우리 *우는 아들처럼 다정했고, 우리 옥이도 딸처럼 사랑스러웠으며, 성은 조카처럼 친근했고, 열이는 친구처럼 부지런했고, 정이는 동생처럼 유쾌했다.


올해도 이쁜 학생들이 참으로 많다. 그중에 연이와 주가 더 눈에 들어온다. 첫날부터 눈을 마주치며 방긋이 웃는 모습과 맛있게 잘 먹었다는 말이 보기에 좋고 듣기에 좋았다. 아마도 내년부터는 그 아이들 이름과 같은 이름을 들을 때 그 이름의 값을 기대하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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