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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Jun 18. 2020

아직은 지고 살겠다

부러워도 참아야지

엘리베이터에서 가끔 뵙는 여사님이 계시다. 내가 이사 온 이후로 계속 뵈었으니 10년이 되어간다. 예전엔 막내아들 등교시켜 주느라 아침 일찍 뵈었었는데, 요즘은 9시경 조금 늦은 출근시간에도 가끔 뵙는다. 그분과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나누는 안면만 있는 사이 서로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었다.


 아침에 그분의 차림새를 보고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하여 인사를 드리고 너무 멋지시다고 한마디 덧붙였다.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요정학교의 명랑한 교장선생님 같은 느낌이랄까,  상냥하지만 장난꾸러기 같은 인상을 지닌 동화 속 교장선생님! 그런 느낌이기도 다.  아담한 체구에 감색 원피스를 입으시고 같은 색상의 모자를 쓰셨는데 '요정같으시다'가 딱 어울리는 차림새였다. 옷과 모자가 너무 멋지시다고 동화 속에서 튀어 난 온 것 같으시다고 속말까지 해드렸더니 그냥 옷을 입었을 뿐이고 머리가 길어서 모자를 쓴 것뿐이라고 기분 좋게 웃으시며 답하셨다.


출근하는 내내 머릿속에서 그분의 옷과 모자가 눈앞에서 어른거리며 생각났다. 보통사람이 입기 쉽지 않은 그런 옷이 어울리다니  정말이지 너무 멋지셨다. 그런 스타일의 옷과 모자는 어디서 사셨는지 궁금한 마음도 들었다.


저녁일을 마치고 9시가 넘어 퇴근하는데 옷에서 땀냄새가 난다. 집과 일터가 가깝고 차로 이동을 하니 옷을 갈아입지 않고 다녀도 상관이 없었다. 여름이 되면서 땀 냄새가 심하게 나기 시작해 옷을 챙겨서 다녀야겠다는 생각은 퇴근하며 하고 아침엔 부랴부랴 나가느라 또 잊어버렸다. 오늘은 일이 고되었는지 냄새가 더 나는 것 같다. 별수 없이 그냥 돌아오면서 누군가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나게 되면 민망하겠구나 생각하며 아파트 입구에 도착을 했는데 아침에 뵈었던 그 여사님이 차에서 내리시는 것이 보였다.


부딧치는것이 부담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공동현관 앞에서 "이제 돌아오시냐"라고 인사를 나누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그 여사님은 계단으로 올라가시겠단다. 다행이라고 속마음이 안도한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와~그래서 그렇게 예쁜 몸을 유지하시나 봐요" 감탄을 했더니 픽 웃으시며 아니라고 겸손하게 말씀을 하시는데 내 눈에 그분은 정말이지 멋져 보이셨다. "퇴임하신 거죠?" 아 난 푼수다 왜 또 말을 건 거지! 내 자신이 한심해졌다.


그분 환하게 웃으시며 교사로 재직하시다 퇴임하시고 사진작가로 활동하시며 일본과 프랑스에서 전시회도 하셨다고 대답해 주신다.  "와!! 그래서 지난번엔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나가신 거군요. 정말 멋지세요." 나도 모르게 감탄사는 저절로 나오는 내 모습을 나 스스로 볼 수 없었으나 아마도 한없이 부러운 시선으로 그분을 처다 보았을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해서 나는 그것을 타고 그분은 계단으로 올라가셨다.


교사로 정년퇴직을 하시고 자신의 취미를 살려 제2의 인생을 살고 계시는 그분이 한없이 부럽다. 예쁜 옷과 모자도 너무 부럽다. 전문가용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가죽 부추를 신고 또 그에 어울리는 모자를 쓰고 나가시던 그날도 참으로 인상 깊었다. 그래서 카메라를 말씀하시는 순간 그날이 기억났다. 그날도 안녕하시냐고 인사만 나누었지만 너무 멋지시다고 속으로 말했었다.

그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시고 일본으로 프랑스로 전시회도 하러 다니신다는 말씀을 오늘 듣고 더 많이 부러워졌다. 자신의 취미를 전문가 수준으로 끌어올리신 열심도 대단하고 취미 생활할 수 있는 시간과 경제적 여유 그리고 작가적 재능이 있으신 것도 부럽고 멋지시다.


집으로 돌아와 가만히 생각해 본다. 그분의 사진을 보지는 못했으나 신비로울 것 같다. 얼마 후 지역에서도 전시회를 하신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기회가 된다면 그분의 사진을 보러 가야겠다. 내 생각처럼 신비로움이 있으면 좋겠다. 아니 내 상상보다 훨씬 더 멋진 사진이었으면 좋겠다.


그분의 연령대를 생각해 보았다. 뵙기에는 훨씬 젊어 보이나 정년퇴임 후라 하셨으니 나와 10여 년은 넘게 차이가 나겠다. 많이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계속 져야겠다. 아직은 옷에서 땀냄새가 나도록 내 할 일을 열심히 하고 내가 저분의 나이가 되면 그때 견주어 보리라 다짐한다. 나도 글쓰기의 어떤 열매가 맺어져 누군가에게 멋지다는 소리를 듣고 작가다운 옷차림으로 외출도 하고, 누군가를 만나서 내 소개를 하게 될 때 제가 무슨 책의 저자랍니다라고 말씀드리면 자신의 꿈을 이루고 사는 모습이 너무 멋지시다는 소리를 듣는 그런 인생 살아야겠다. 그래서 부러운 마음은 잘 다스리고 나는 오늘도 책을 읽고 글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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