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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Jul 26. 2020

세 자매의 노래

 "보리수"

내 기억 속에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노래는 '보리수'이다. 슈베르트의 곡이라는 것을 몰랐던 아주 어린 시절 언니들과 이 노래를 불렀다.

국민학교 다니던 큰언니가 성문. 성문. 성문 세 번의 성문을 각각 다른 화음으로 선창을 하면 세 자매가 다 같이,


성문~앞 우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 꿈을 꾸었네~


우리 집 뒷곁에 작은 보리수나무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나무 옆에는 된장이나 고추장 간장이 담긴 큰 항아리가  있었다. 이 노래를 부르던 어느 날에 보리수나무 아래에 앉아 보았다. 나무가 크지 않아 노래 가사 속 그늘을 만들어 주지 못했다. 나무 밑에 앉아 있다기보다는 항아리 옆에 앉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노래 가사처럼 보리수나무 아래서 단꿈을 꿔 보고 싶어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앉아 있다가 어떤 꿈을 꿔야 할지 몰라 금방 일어나 버리곤 했었다.


보리수나무의 열매는 검붉게 익었을 때 자세히 살펴보면 탱글한 속살 속으로 길쭉한 씨앗이 느껴진다. 보리수 열매의 긴 꼭지를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붙잡아 입에 넣고 혓바닥에 힘을 주어 빨아먹으면 꼭지에 씨가 달랑 붙어서 입 밖으로 쏙 빠져나온다. 시큼하기도 떫기도 한 맛이 단맛과 어우러져 그냥 먹을만했다. 꼭지에 길쭉한 씨앗만 빠져나오는 그 재미가 좋아 보리수를 따먹었었다.


가지에 희망의 말 새기어 놓고서 기쁘나~ 슬플 때~나 차 아자 아아~온 나~무 밑

차자아~온 나~무 밑


나는 어려서 '성문 앞 우물곁에' 까지만 제대로 된 멜로디로 부르다가 다음 가사가 시작될 때 언니들의 화음을 따라 엘토로 바뀌어 버렸다. 그러면 다시 큰언니가 멜로디로 바꿔 부르고 나는 또 언니를 따라 화음을 옮겨 다녔다. 그러면 노래를 부르다 말고 깔깔거렸고 그렇게 또 한참을 웃다가 처음부터 다시 부르자고

성문.

성문.

성문을 변함없이 큰언니가 선창하고 '성문 앞 우물곁에~ '노래를 불렀다. 하루에도 몇 번씩 깔깔거리며 그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열심히 부르다 어느 순간부터 언니들과 제법 화음을 맞춰 노래를 부르게 되었었다.


내가 조금 더 자란 후 중학교 윤리 시간에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인도 왕자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도를 깨달았고 부처님이 되었다는 것을 배웠다. '아! 보리수나무는 꿈을 꾸게 하더니 도를 깨닫게도 하는구나' 그 생각을 하며 우리 집 뒷곁의 보리수나무를 유심히 처다 보았었다. 하지만 도대체 우리 집 나무는 몇 년을 더 키워야 그늘을 만들어 주고 그 밑에서 단꿈도 꾸고 깨우침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지만 그래도 내가 다 커버리기 전에 나무 밑의 그늘에서 단꿈도 꾸고 도를 깨닫는 삶을 살면 좋겠다고, 노랫말처럼 나뭇가지에 꿈을 써서 걸어 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오늘 밤도 지났네~ 보리수 곁으로~ 캄캄한 어둠 속에 눈감아 보았네


언니들은 직장으로 학교로 집을 떠나갔다. 집에 남겨진 나는 늘 우울했다. 내 청소년기는 어두운 밤의 연속 같았다. 아픈 아버지의 스트레스를 받아내기에 나는 아직 어렸다. 어느 날 우리 집의 보리수나무를 베어냈다. 먹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였다. 나무가 없어진 것이 몹시 아쉬워 나중에 내 집이 생기면 보리수나무를 심으리라 생각을 했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문득문득 내 입안에서 '성문. 성문. 성무~은! 성문 앞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꿈을 꾸었네, 가지에 사랑의 말 새기어 놓고서 기쁘나 슬플 때에나 찾아~~~ 온 나무 밑 찾~~ 아~~ 온 나무 밑!' 노래가 뜬금없이 흘러나온다. 그럼 그 노래 속에서 어린 내가 언니들과 노래하고 깔깔거리며 마냥 행복하던 시절이 생각나고 다정했던 언니들과의 놀이가 생각나고 손가락에 봉숭아 물을 들여 주셨던 엄마가 생각나고 건강하셨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이 노래의 2절은 첫 구절만 생각난다. 그 뒤의 가사가 궁금해서 오늘 찾아보았는데 무척이나 생소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일절만 부르기로 했다. 2절은 없기로 했다. 원래 이 노래는 1절만 있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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