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늘 밝은 얼굴이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세상이 행복하고 평화로웠다. 남편의 직업이 교수란 사실을 알고 세상 물정 모르는 속 편한 사모님이라 그렇지! 라는 마음이 들었었다. 조금 더 친숙해진 후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섣부른 판단이 미안해졌었다.
엄마 없는 홀아버지 아래서 삼 남매가 자랐는데 아버지는 술주정이 심했고 오빠는 제 맘대로 살고 가난하고 힘들기도 하였지만 괜찮았단다. 고등학교 시절 한 벌뿐인 교복을 오전에 여동생이 입고 학교 다녀오면 밤엔 본인이 그 옷을 입고 학교를 다녀오고 늦은 밤에 빨래해서 널고 아침엔 덜 마른 옷을 다림질로 말려 동생이 입고 저녁에 다시 본인이 입고 다니기를 반복했다는 이야기를 즐거운 추억이 소환된 듯 환하게 웃으며 말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무실에 취직하고 사무실 소장님과 결혼했는데 IMF 때 그 사무실이 망했었다나! 그러니까 그 댁 사업이 망했단 소리잖아요. 그래서 뭐 먹고살았어요? 내 질문에 "요구르트 배달을 했지, 뭘 해서라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남편분이 교수라면서요? "망해서 교수"가 되었단다. 헐! 능력자였어! "능력은 있다. 하지만 가난하고 빚도 많은 교수"라며 여전히 웃으며 대꾸했었다. 나와 알고 지내던 십수 년 전 그녀는 24평의 아파트에서 병환 중인 시부모님과 그들 부부 그리고 아들 형제까지 여섯 식구가 살고 있었는데 답답해하거나 불편한 기색은커녕 늘 행복해했었다.
책 '미움받을 용기'를 읽다가 '행복해질 용기'부분에서,
꽤 오래전에 알았던 환한 미소의 그녀가 떠올랐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 옳다고 인정이 되었다. 그녀는 나쁜 환경, 술주정하는 아버지와 그것으로 자신을 망가트린 오빠와 상관없이 본인은 행복하기를 선택하였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책에서 그것이 용기라고 말했다.
그녀와 달리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청소년기를 지냈다. 공부를 잘하는, 그림을 잘 그리는, 글씨를 잘 쓰는,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건 죄다 언니들이고 말 안 듣고 산만하고 시끄럽고 욕심 많고 못생기고라는 수식어가 붙는 사람은 나였다. 나에게 가장 큰 칭찬(?)은 여우 같다는 말 정도였다. 난 열등감 투성이었다.
이 책은 철학자와 청년이 대화를 통해 아들러 심리학을 설명하는 글인데 철학자의 말보다는 의문을 품은 청년의 말에 공감이 많이 되었었다. 그러다 서서히 철학자의 말에 그러니까 아들러의 심리학에 설득되어 고개를 끄덕거리며 읽게 되었다.
책 제목은'미움받을 용기'지만 그 용기의 목적은 결국 '행복해지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행복한 삶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단다.(왜 책 제목이 미움받을 용기일까 이해가 안 갔는데 이 부분 때문일 듯)
사람은 누구나 인정 욕구가 있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을 통해서 언니들과 비교될 때 불행한 마음은 당연하다 생각했다. 달리기를 잘해서 운동회때 1등을 하고 웅변대회에 나가서 상을 탔을때도 부모님의 칭찬은 인색했다. 그래서 공부나 예술적 재능이 아닌것은 열등한 것이라 생각했었다. 내 생각은 타당한것 아닌가?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라는 자기 계발서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었는데 인정이나 칭찬은 그렇게 춤을 추게 하고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칭찬은 수직적 관계의 언어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그리고 칭찬을 하지 말라고 권한다. 입장을 바꾸면 칭찬을 받으려고 노력하지 말라는 소리로 들렸다. 이 부분은 그렇겠다고 이해되기도 하였지만 모두 옳다고 인정되지는 않았다. 다만 미움받을 용기란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 없다는 말로 이해했다. 모두에게 칭찬받으려 자신을 소모시키는 행동을 삼가고 나쁜 평가를 받더라도 그것에 영향을 받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내 열등의식은 부모님께 칭찬받지 못해서가 원인이라고 어릴때의 그런 환경이 열등적인 나를 만든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원인을 환경에 두어 열등한 나 자신을 정당화시키려는 의도로 내가 선택한 것이라고 철학자의 말을 통해 마주한 사실에서 늘 환하게 웃던 그녀와 대조적인 선택을 했던 용기 없는 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행복은 '타자공헌'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공동체에 기여'하라는,공동체에 유익한 존재가 되라는 것이다. 여기서 공동체는 사람을 벗어나 우주와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를 일컫는다. 너무 거룩해지는 느낌이다. 공동체에 가치 있는 존재가 되려면 어떤 선한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일까. 희생적 삶을 살아야 한다면 행복해지기 전에 지쳐버릴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답은 너무 단순하다. '존재만으로 가치가 있다'고 한다. 풍선이 부풀어 오르다 갑자기 바람이 빠진 느낌과 비슷하게 허전해졌다.
스스로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가. 존재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철학자는 "모든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행복하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나는모든것이 평화롭고 행복했던 그녀에 대입해서 '자매라는 공동체로 안정감을 얻는 것, 여동생과함께 한 벌의 옷을 입으며 행복을 공유하는 것이 서로에게 존재로서 가치 있고 공헌을 한 것이다' 라고 해석하고 이해했다.
책을 읽은 지 여러 주가 지나도록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너무 이상적이고 자기 쉬운대로 생각하라는 말 같아서 조금 불편하기도 하였고 한편으로는 너무 이기적이라는 판단도 들었었다. 그래서 독서모임을 위한 서평은 불만 가득한 내용을 써서 제출한 후 브런치 서랍에 저장하고는 여러 번 읽고 고치고를 반복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하면 할수록 행복은 복잡할 필요가 없고 단순한 게 맞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동안 미움받을 용기가 없어서 자신을 소모시키며 살았기 때문에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사람들, 지인들, 우리집서 밥 먹는 학생들, 무엇보다도 내 가족을 생각하니 그들의 존재만으로 내게 행복을 주고 있고 나의 존재가 그들에게도 어떤 의미가 있으리라 여겨져 행복한 마음이 더욱 커졌다.
그래서행복하게 사는 것 그리 어렵지 않다. 행복해지기 위해 우선 자신의 감정을 소모시키면서까지 인정받으려 수고하지 않을 '미움받을 용기'가 있으면 되고 함께 하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게 존재의 가치를 느낄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이 바로 '행복해질 용기'다라고 결론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