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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Aug 25. 2020

딸 같은 아들은 싫다

그냥 아들이라 좋다

"아들들이 모두 자상해서 좋으시겠어요, 아들이 많으면 딸 같은 아들이 있다던데 그게 누구예요?" 자주 듣는 질문이고, "저는 그냥 아들만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아들만 셋!

큰아들은 경북에, 둘째 아들은 서울에, 고등학생 막내는 집에 있다. 외지에 사는 두 아이가 한 달에 한 번은 집에 왔었고(코로나 사태 이후엔 그렇지 못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효도전화를 하고 가족 카톡방에서 자주 안부를 전한다.

토요일 오후나 저녁엔 둘째 아들에게 전화가 오는데 보통 10~15분 정도 통화한다. 여자 친구와 언제 만났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졸업작품은 잘 되어가고 있는지 날씨가 더운데 잠은 잘 자는지를 묻고 답하고 그러다 책을 많이 읽으라는 내 잔소리를 끝으로 "아들 사랑해"하면 아들은 "저도 사랑해요"대답하며 전화를 끊는다.


일요일 밤엔 큰아들에게 전화가 오고 20분 정도 통화를 한다.

시작은 둘째 아들과 비슷하게 여자 친구와 뭐 하고 놀았는지, 밥은 뭐 먹었는지, 운동은 열심히 하는지 등을 이야기하다가 승진을 하려면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잔소리도 하고 주식에 관한 이야기도 나눈다. 아들은 내가 한 투자에 대하여 묻고 잘했다고 칭찬도 하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지적도 해준다. 그리고 마무리로 각자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어떤 내용인지를 정보를 주고받은 후 "아들 사랑해"하면 아들도 역시 "저도 사랑해요"라는 대답으로 통화가 끝난다. 가끔 통화할 시간이 늦어질까 봐 데이트 중에 전화가 올 때도 있는데 그땐 여자 친구와 놀지 왜 전화했냐고 말하고 바로 끊는다. 아들이 괜찮다고 말해도 끊는다. 난 눈치 없고 주책스런 엄마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모자 관계를 아는 사람들이 딸 같은 아들이라는 표현을 쓰며 자상하다고 칭찬(?)을 한다. 난 그 말을 싫어한다. 자상 한 건 딸의 역할인 거냐, 난 딸이라도 우리 엄마한테 자상하지 않다고 그냥 내 새끼가 나한테 잘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럼 잘하니까 딸 같은 아들이라고 또 말한다. 기어이 딸 같은!으로 남의 아들의 역할을 규정짓는다. 그렇다고 싸울 일도 아닌지라 그냥 아들이야!라고 말하고 만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바리깡으로 내 머리카락을 이발해 주셔서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상고머리를 하고 다녔었다. 툭하면 여자냐, 남자냐?라는 질문을 받았었다. 중학교 다닐 때도 커트머리를 하고 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버스를 타면 안내양이 물었다. 여자니 남자니? 내가 여자다라고 대답을 하면 기사한테 가서 "제 여자예요"라고 일러주고 자기들끼리 나를 쳐다보며 뭐라 뭐라 했었다.

청소년 시절 힘쓰는 집안일을 했다. 아버지께서 계속 편찮으신 상태였으므로 땔나무를 해오고 산밭에서 거둔 콩을 지게로 짊어지고 오고 낫으로 꼴을 베는 일들을 해야만 했다. 꽤 잘했다. 사실은 웬만한 남자들보다 더 잘했다. 왼손으로 풀 허리쯤에 벽을 치고 오른손의 낫으로 땅바닥을 닿을 듯  스치면 왼팔에 풀이 한가득 쓰러진다. 무협 드라마에서 무림고수가 칼로 대나무를 벤다거나 촛불을 끈다거나 하는 그런 멋짐을 흉내 내면서 낫질로 풀을 쓰윽 베어 왼팔로 쓰러트릴 때 짜릿한 쾌감을 즐겼다.  그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하면 어느샌가 풀더미는 내 등이 감당할 만큼 지게에 쌓였다.


일가친척들이 "혜정이는 남자처럼 지게도 잘 지고 리어카도 잘 끌었다"라고 칭찬인 듯 그때 일을 말한다. 난 남자처럼 이란 말이 듣기 싫다. 일 할 사람이 마땅치 않아 내 차지가 된 일을 자주 투정을 부리며 했고 가끔 폼나게 했을 뿐이다. 그냥 풀 베는 실력이 좋지 라고 말했다면 "예전에 내가 한 낫질했죠" 하면서 자랑삼아 "풀이 왼팔로 쓰러질 때 장군의 칼 앞에 적군이 쓰러짐처럼 멋진 낫질이었죠"라고 말할 수 있으련만 남자처럼 아들 몫을 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상해 "그때 형편이 그랬죠"라고 대꾸하고 만다.


예전엔 아들을 선호해서 아들 같은 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요즘엔 딸을 선호해서 그런지 딸 같은 이란 말을 많이 듣는다.  딸을 낳으면 금메달이고 아들을 낳으면 목메달이라는 말이 있고, 딸이 있으면 비행기 타고 여행 다니지만 아들이 있으면 비행기 타고 남의 나라에 가서 버려져 못 돌아온다는 말도 들었다. 딸과 함께 쇼핑을 했네, 유럽여행을 갔네, 영화를 보았네 자랑도 한다. 그럼 좋겠다고 상대방이 원하는 정도의 부러운 척을 해주기도 하지만 사실은 나도 자랑할 것이 많다.


키가 182센티나 되는 막내아들은 무표정한 내게 "엄마 무슨 일 있으세요? 나한테 말해 보세요"라고 말한다. 무슨 일이 없어도 만들어 털어놓고 싶을 만큼 듬직하다. 외지에 사는 두 아들은 집에 올 때는 내가 보이는 순간부터 팔을 벌리고 걸어와 나를 안고 어깨를 토닥거린다. 또 지들 사는 곳으로 돌아갈 때도 들어올 때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집을 나선다. 내가 어쩌다 수면 양말이 목이 늘어났네, 핸드크림이 떨어졌네, 노트가 필요하네, 잘 써지는 볼펜이 있으면 좋겠네 라고 별생각 없이 말해도 그 말을 기억하고 집에 오는 날 사들고 온다거나 택배로 배달시켜 준다. 독서모임에서 필요한 책 목록을 가족 톡에 올려놓으면 큰아들이 주문해서 보내주며 엄마에게 주는 아들 선물이라고 이쁘게 말해준다.


아들들이 집에 오는 날이면 맛있는 것 해 먹고 함께 운동도 하고 산책도 하고 교외의 멋진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며 밀렸던 이야기를 나누고 밤이면 루미큐브 게임을 한다. 아이들이 어려서는 두 사람이 장기를 두고 다른 식구가 훈수를 하였었는데 엄마 아빠 사이좋게 지내고 치매 예방도 일찍부터 하라고 큰아들이 루미큐브를 사다 준 이후로 가족 게임이 바뀌었다.


나는 아들 같다는 남자 같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그 소리가 듣기 싫었다. 그냥 나는 여자고 딸이었다.

난 우리 아들들에게 누군가가 딸 같은 이라는 표현을 쓰면 그게 싫다. 부모와 친하게 지내면 '딸 같은'이고 부모님을 도와 일을 하면 '아들 같은' 이란 이상한 정체성을 만들어 내는 그런 표현이 불편하다. 아들이나 딸이나 자식인 거고 남자나 여자나 한 개인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굳이 '딸 같은'이라는 말로 '아들을 딸 격화' 하고 '아들 같은'이라는 말로 '딸을 아들 격화' 는 것이 싫은 것이다.


'같은' 이라는 표현으로 부모를 위해 아들이나 딸이 없음에 대한 결핍을 채워달라고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 그저 여자는 여자, 남자는 남자! 딸은 딸, 아들은 아들! 사람인 거고 자식이다.

딸같다라는 말을 칭찬처럼 하는 말은 더더욱 거부한다. 칭찬을 하려거든 그 아들 듬직하고 자상하다 정도였으면 좋겠다. 나도 우리 부모님께 그냥 자식으로 있고 싶다. 아들 딸을 구별해서 결핍을 채우는 표현 말고 그냥 자식이라서 좋은 그런 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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