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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Aug 08. 2020

돌아가신 시어머님이 꿈속에 찾아오신 이유

약속을 지키지 않은 며느리

식당 현관에 사람들 여럿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중에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와 이제 가보겠노라고 인사를 하고는 모두 나가는 그들 속에 어머님이 계시다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함께 가시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서 밖으로 뛰어나가 어머니를 붙잡았다. 어머니 왜 그냥 가세요? 내가 손을 잡고 물었으나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다만 돌아가시기 전, 그러니까 병환으로 누워계시기 전, 거동이 가능하던 그 시절, 조금 고단해 보이시던 표정으로 그냥 쳐다만 보신다. 마음이 조급해진 내가 어머님을 붙잡고 안으로 모셔들였다. 그리고 다시 여쭈어 보았다. 왜요? 무슨 걱정이 있으세요? 아범한테 무슨 일이 있어요? 함께 가볼까요?

순간 장소가 식당에서 남편의 방으로 이동했다. 나와 어머님은 잘 자고 있는 남편의 숨소리를 들으며 잘 있어요. 괜찮아요. 안 아파요! 그러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꿈속에서 꿈이란 걸 인식하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돌아가신 어머님이 왜 오셨을까? 돌아가신 분이라 말씀은 안 하시는 걸까? 일어나서 남편 방으로 가봐야 하나? 괜찮다고 했으니까 괜찮겠지! 어머니는 나를 이뻐하셨으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도와주실 거야!'

자는 건지 깨어있는 건지, 꿈인 건지 생시인 건지, 구별되지 않는 시공간에서 어머니께 내가, 또 나 혼자 그렇게 중얼거리며 밤을 보냈다.


꿈속에서 내가 한 말들을 설명해야겠다.

8년 넘게 주말부부로 지냈었다. 손이 한참 가야 할 아이들을 키우는 시기에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제발 함께 살게 해 주세요"라며 기도 했었는데, 큰아이와 둘째 아이가 독립을 준비하고, 셋째도 중학교에 입학할 즈음엔 기도응답이었는지 남편이 사표를 쓰는 바람에 함께 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일을 시작했다. 기도한 것보다 훨씬 큰 응답(?)! 하루 종일 24시간을 함께 지내게 되었다. 한 침대에서 자고 함께 일어나 같은 곳으로 출근하여 방보다 더 좁은 주방에서 함께 일하고 일이 끝나면 집으로 함께 퇴근하였다.


낯선 일을 하느라 아무런 생각을 할 여력이 없이 살다가 둘이 티격태격 치열한 싸움을 하고 나면 어쩌다 내가 그런 기도를 했을까 "아침에 각자 출근해서 저녁에 한집으로 퇴근하는 그런 이상적인 삶을 살게 해달라고 했어야 하는데"라며 후회를 했었다.


여하튼 그래서 머리를 쓴 것이 "낮에 함께 일하니 잠을 따로 자자"였다. 처음 그 제안을 했을 때 남편이 불쾌한 표정을 짓고 몹시 기분 상해하는 바람에 슬그머니 철회했다. 그러다 싸움이 반복되고 "따로 숨 쉴 공간을 가져야 한다"는 제안을 했는데 또 거절, 그렇게 5년 가까이 벼르다 별로 화낼 일도 아닌 일이 생겼을 때 기회다 싶어 심하게 토라진 체를 하고 내가 베개를 안고 빈방으로 독립했다. 며칠을 그렇게 지내고 있으니 남편이 나더러 안방으로 가라고 당신이 빈방으로 가겠다 하여 합의된 각방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작년 7월말 남편의 뇌졸중 이력은 순간순간 나를 두렵게 한다. 그래서 지난밤 꿈에서도 잠자는 남편 방을 어머니와 찾아가 괜찮은지를 확인한 것이었다.


알람 소리에 잠이 깨었다. 그쯤에 남편이 일어나서 안방으로 들어오는데 깨어난 기척이 들리지 않는다. 지난밤 꿈이 생각나서 남편 방으로 찾아갔다. 방문을 열고 다보자 웬일이냐 반기며 팔을 내민다. 팔 배게 하고 누우라는 표시다. 토요일 아침이라 조금 게을러도 되겠다 싶어 팔을 베고 옆자리에 누워서 물었다.

"지난밤에 누가 왔어요?" "뭔 소리? 누구가 누구야?"

"있잖아 어머니 오셨었는데, 아무 말씀도 안 하시는 거야? 돌아가신 분이라 말씀이 없으신 건가? 아버님 집에 무슨 일 있나? 그동안 한 번도 안 오셨었는데 무슨 일일까요?" 지난밤 꿈에 대하여 열심히 설명하다가,


"아!!! 알았다. 내가 어머니랑 약속을 안 지켜서! 그래서 쳐다만 보신 거야!"

"도대체 뭔 소리야?"
"어젯밤 브런치에 아들들에게 데이트할 때 어떻게 하라는 잔소리를 써서 발행했거든. 그런데 난 어머님과 약속을 안 지켰네! 에고, 속상하시겠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시댁으로 인사를 올리러 갔을 때다.

어머님께서 내게 "부탁이 있다"고 하셨다.

"얘야, 네가 잘할 줄은 안다마는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난 아들이 설거지하는 게 싫다. 다른 것은 시켜도 그것은 시키지 마라"

나는 결혼을 하면서 전업주부가 되었으므로 가사분담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기에 어머님의 그 부탁은 별스럽지 않게 받아들였다. 알겠다고 걱정 마시라고 씩씩하게 약속을 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6년째 어머니 아들은 하루 종일 설거지를 하고 있다. 그것이 마땅치 않아 식당 현관에서 쳐다보시고 아무 말씀도 없이 그냥 가시려고 했었나 보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며느리가 손주들에게 훈수를 두는 것이 어이없으시고 섭섭하셔서 그래서 찾아오셨나보다.


말을 마치고 나니 남편이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준다.

난 "어머니 이건 생업이니까 봐주세요" 마음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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