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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Sep 29. 2020

시끄러워서 죄송합니다.

아니요, 시끄럽지 않아요.

아래층에는 돌 지난 아기가 있다. 

가끔 아~앙, 아아앙.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여러 날 전에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 아기의 할머니를 뵈었는데 아이가 밤에 울어 시끄럽겠다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나는 무슨 말씀이시냐고 "요즘처럼 아기가 귀한 때 울음소리가 들려서 너무 좋다"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울음소리가 들리기는 하나 시끄럽지도 않거니와 나이가 들면서 아기가 귀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솔직히 웃으며 대답한 이유는 따로 있다.


16년 전, 우리 가족은 새로 분양한 아파트에 입주하였다. 아이들에게 이웃 어른을 만나면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리라고 가르치고 있었다. 우리 동에 사시는 분이든, 방문을 하신 분이든, 하루에 몇 번을 뵈어도 다시 인사를 드리라고 가르쳤고 물론 우리 부부도 뵙는 모든 분들께 인사를 드렸다.


웃으며 대답한 이유가 있던 날이다.

아래층 여사님을 1층의 엘리베이터 앞에서 뵈었다. 반갑게 안녕하시냐고 인사를 드렸더니 방긋 웃으시며 "윗집 맞죠?" 하신다. 내가 그렇다고 대답을 하자,
"아이들 기죽이지 마세요" 하신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무슨 말씀이시냐는 표정을 지었다.


"어제 엘리베이터에서 초등학생 아이가 인사하길래 어디 사냐고 물었어요. 12층 산다잖아요. 반가워서 아래층에 산다고 했더니요. 그 아들이 갑자기, 저희가 시끄러워서 죄송합니다, 그러잖아요. 그래서 하나도 안 시끄럽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네요. 아이들이 건강해서 뛰는 거예요. 시끄럽다고 뭐라 하지 마세요. 우리 안 시끄러워요. 진짜 시끄럽지 않으니까 아이들 기죽이지 마세요"라고 말씀하셨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며 "저희 집에 아들이 셋인데 중학생 큰아들과 어제 인사드린 둘째 아들과 유치원생 막내가 있어요. 늦은 시간에 큰 걸음으로 걷거나 종종거리고 다니면 아래층에서 시끄러워하신다고, 젊잖은 어른들이 사시니까 9시 넘으면 조용히 해야 한다고 자주 주의를 주고 있어요"라고 말씀을 드렸다. 여사님은 11층에 도착하여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시며 또 "이쁜 아이들 기죽이지 말라, 나도 아들만 둘 키웠다"라고 하셨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들과 아래층 여사님의 대화를 상상하니 웃음이 나왔다.

아들 셋 중에 제일 콩콩거리며 다니는 녀석이다. 욕실에서 씻고 콩콩 뛰어나오고, 밥 먹으라고 부르면 방에서 콩콩 뛰어나오는 늘 에너지가 팔팔한 녀석이 아래층 아주머니를 뵙고 그렇게 말씀드린것을 보니 스스로 찔렸던 모양이라고 짐작을 해보았다.


좁은 집에서 살다가 조금 넓은 집으로 이사한 직후라 마냥 좋아서 그러려니 이해는 되었지만 층간 소음으로 아래층에 폐를 끼칠까 늘 조심을 시켰다.

뛰지 마라, 살살 다녀라, 밤에는 더 조용히 다녀라 등등.


그날 저녁밥을 먹으며 낮의 일을 내색하지 않고 이웃 분들께 인사를 잘하는지, 아래층의 어른들을 뵌 적이 있느냐고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둘째 녀석 그제사 말했다.

"저요, 인사 잘해요. 어제 아래층 아주머니께 인사했는데 우리 집 하나도 시끄럽지 않다고 하셨어요" 아주 신나서 말했었다.


남자아이들의 발소리를 조용하다 말할 수 없다. 위에 층 아이들의 씩씩한 발걸음은 늘 신경이 쓰이는 일임을 나도 겪어 보아서 알고 있다.

그런데 아래층 여사님이 하신, "아이들 건강해서 뛰는 거다. 시끄럽다고 기죽이지 마라" 말씀을 염치없이 믿고 싶었다. 그분에 대한 고마운 기억 덕분에 나도 아래층 할머니께 "요즘처럼 아기가 귀할 때, 울음소리가 들려서 너무 좋아요"라고 웃으며 말씀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말은 아래층 여사님을 흉내 낸 것이지만 마음은 진심이었다. 정말 시끄럽지 않다. 아기 소리가 들려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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