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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Oct 04. 2020

동네 어르신이 모두 시어머니?

나의 살던 시골은 (2)

"일찍 솎아줘야 하는디, 도시서 이사와 뭘 알것어, 암말 말고 솎아 가유."

(서울에서 이사는 왔지만 깡촌에서 자란 우리 부부다. 그래서 농사일, 목장일을 겁 없이 시작할 수 있었다. 우리  태생을 알리 없는 시골 어르신들은 우리가 단지 서울에서 이사 왔다는 이유로 도시 사람이라 칭하셨다.)


텃밭에 얼갈이배추씨를 뿌렸다. 며칠이 지나자 작은 싹들이 올라왔고 날이 바뀌며 눈에 띄게 자라났다. 오밀조밀 밀집한 얼갈이배추는 보기에 이뻤다. 밭의 한 귀퉁이가 초록으로 꽉 차 있는 것이 좋아서 그냥 놔두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위와 같은 말소리가 들려서 나가보니 사돈(시누님 시어머니) 어른과 옆집 할머니(할머니 자매가 사셨다)들이 우리의 얼갈이를 솎아 내고 계신 것이다. 안녕하시냐고 인사부터 하고 무슨 일이시냐고 여쭈었다.

"이거 솎아줄 때가 한참 지나서 내가 이니들더러 솎아가라고 했슈" 흡족한 얼굴로 사돈어른이 대답하셨고

나는 "아! 네, 이뻐서 그냥 둔 건데요"라고 말씀드렸다.

"에고, 도시 사람이라 뭘 물러, 밀식되면 제대로 못 커서 내가 해준건디, 아까운게벼" 언짢은 안색으로 사돈어른이 말씀하시곤 솎아 놓은 얼갈이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는 눈치를 보이셨다.

가져가시라고, 아까워서 그런 것 아니라고, 우리는 남아있는 것도 너무 많다고, 말씀드린 후 집으로 들어왔는데 나는 나대로 속상하고 사돈어른은 그분대로 속상한 사건이 되었다.


옆집 할머니 댁과 우리 집의 텃밭의 경계가 애매하여 한 발짝 정도 공간을 비워 두었었다. 이 분들 그 자리까지 밀고 들어와 야채를 심으셨다. 그럼 다시 한 발짝 뒤로 물러나오면 또 그 자리에도 뭔가를 심으셨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우리 텃밭이 없어지겠다 싶어서 이웃집 할머니께 경계를 자꾸 밀고 나오지 마시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왜 땅을 놀리냐, 아까워서 뭘 좀 심은 것"이라 하셨다.

에고야, 우리가 땅을 놀리는 사람이라 생각하셨다는 것이다.


몇 평 되지도 않는 텃밭에 고추를 심어 놓았는데 여름이 되면서 빨갛게 익는 것들이 생겼다. 초록의 고추와 붉은 고추가 함께 있는 모양이 은근히 이뻐 보였다.

지나가던 동네의 어른이 한마디 하셨다. "고추가 빨개지면 따서 말려줘야 하는겨"

하나하나 알려줘야 하는 도무지 뭘 모르는 도시 사람 취급하셨다.


젖소에게 젖을 짜는 작업을 착유라 한다. 이 일은 아침과 저녁, 소들의 식사시간에 이루어진다.

아무리 늦어도 아침 6시 전에는 일어나서 우사를 청소하고 아침밥을 주고 깨끗한 물로 젖을 닦아주고 수건으로 말린 후 착유를 해야 소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착유시간이 늦어지면 젖이 불어 소들이 통증을 느끼고 화를 낸다. 그래서 이른 시간에 목장 일을 하고 오전에 낮잠을 자는 날이 많았다.


"도시에서 와서 시골일이 힘든가벼, 선선할 때 일하고 한낮에 쉬어야 하는디, 이 시간에 쉬면 언제 일햐" 

산으로 나물 캐러 가시던 이웃 할머니들이 시간 분별을 못한다고 걱정하는 말소리가 집안으로 새어 들어왔었다. 세상에나, 방 안이 보이는 것도 아닌데 우리가 쉬고 있는 것은 어찌 아시는지, 나는 또 그런 말소리가 왜 그리 잘 들리는지 모를 일이었다.


시장을 가기 위해 차를 타고 동네를 지나가려면 요즘의 초등학교 앞의 속도보다 더 늦은 속도로 움직여야 했다. 어디서 갑자기 나타날지 모르는 어르신들을 주의해야 했고, 또 마을 중간에 있는 송방 앞 평상에서 쉬고 계시는 어르신들께 인사도 드려야 했다. 그냥 지나쳐 버리면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쳐다보시며 어디로 가는지, 누구네 손님으로 왔다 가는지를 궁금해하셨다. 그래서 창문을 열어 인사를 하고 도시에서 내려온 젊은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드리며 지나다녔다.


처음 한동안은 우리 부부의 일거수일투족이 동네 어르신들의 말거리가 되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마을의 어른들이 모두 시어머니고 내가 시집살이당하는 것 같다고 투덜거렸다. 얼갈이배추가 밀집돼서 크든 말든 신경 쓰지 않으면 좋겠다고, 고추가 파랗든 빨갛든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고, 왜 남의 땅의 경계를 밀고 자꾸 쳐들어오는 거냐고, 낮잠을 자든 말든 왜 눈치를 주는 거냐고, 어쩌다 시내로 시장을 보러 가는 것도 내 맘대로 못한다며 다소 과장된 말들로 불평을 했었다.


이런저런 사건이 계속 있었지만 시골 살이와 이웃들의 관심이 시간이 지날수록 적응이 되었다.

호두나무 아래에 세워둔 버섯목에서 느타리버섯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며칠 비가 내렸다. 비가 그쳐 버섯을 따러 나갔더니 느타리버섯이 손바닥을 쫙 피고 있는 모양처럼 되어 있었다. 크기도 쫙 핀 손바닥보다 넓고 손가락 사이가 빈 것처럼 느타리도 사이사이 찢겨서 보기에 심난스러웠다. 못생긴 그것들은 따서 산으로 휙 던져 버리고 있었는데 마침 이웃집 할머니들이 지나가시다 아까운 것 버린다고 야단하셨다.

"이렇게 생긴 느타리 처음 봐요, 이것은 못 먹어요."라고 말씀드렸지만 괜찮으니 달라고 하셨다. 내가 버리려는 것 가져다 어찌하실까 싶었으나 계속 안된다고 할 수 없어 손에 들고 있던 것과 다른 것도 따서 드렸다.


그날 저녁 할머니들께서 각종 야채와 느타리버섯이 들어간 전을 만들어다 주셨는데, 낮의 그것으로 만든 것이라 상상이 안 되는 맛있는 전이었다. 손바닥보다 더 크게 쫙 벌어지고 비바람에 할퀸 자욱이 있어도 느타리버섯의 맛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바로 밖으로 나가 낮에 산으로 휙 던져 버렸던 느타리버섯을 찾아와 끓는 물에 데쳐 할머니들처럼 전을 해 먹었다. 역시 맛이 좋았다. 나는 모양만 보고 먹을 것을 버리는, 뭘 모르는 도시 사람이 맞았다.


아랫마을의 할아버지 한분은 산에서 싸리버섯과 능이버섯을 채취해 오시다 우리 집에 들러 "이런 것 도시서는 못 먹어 봤을 것"이라며 주고 가셨는데 이런 버섯은 그 철에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뿐만 아니라 다래랑 머루랑도 따다 주시며 아이들 보여주라고도 하셨다.


또 밤 농장을 하시는 이웃 어른들은 밤과 은행 등을 나누어 주셨고 출석하는 교회의 성도님들은 아이들을 위해 과자 등을 준비해 주시기도 하셨었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선물이 있다. 제주도로 여행 다녀오신 집사님께서 우리 아이들 구워 주라고 돔을 사 오신 것이었다. 그 돔을 아이들이 맛있게 잘 먹었다는 인사를 드렸더니 당신들은 냉동실에 그냥 있다고 다 가져가라 하셔서 그 댁 몫으로 사 오신 것도 모두 가져와 우리 아이들이 맛있게 먹었었다.


시골의 어르신들이 시어머니와 닮은 것은 맞다. 내 시어머니는 일주일에 한두 번 꼭 전화를 하셔서 안부를 확인하셨고, 자주 보기를 원하셨고, 뭐든지 주고 싶어 하셨고, 자식 사랑이 유난하셨고, 무슨 일이든 궁금해하셨다. 시골의 이웃분들도 그랬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 궁금해하셨고, 젊은이들이 동네에 있어서 좋아하셨고, 뭔가 있으면 주고자 하셨고, 뭐든 알려 주고 싶어 하셨다.


시어머니를 닮은 이웃 분들과 잘 지내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른들이 뭘 가르쳐 주고 싶어 하시면 네~네! 대답하고, 뭔가 주시면 "잘 먹겠습니다."하고, 뵐 때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리면 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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