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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Oct 15. 2020

아들의 생일 아침에 라면을 끓였다.

라면의 의미

10월 15일 오늘은 큰아들의 생일이다.


강원도로 발령을 받아 떠나기 전에 집에 왔는데 마침 생일이 닿아서 내 맘이 흡족했다.


13일 오후 집으로 출발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뭘 해먹일까, 무엇하고 놀까 계속 궁리를 하는 내게 남편은 욕심내지 말란다.

일을 마치면 밤 9시가 되는데 뭘 할 수 있겠냐고,

어차피 내일(14일)도 하루 종일 일해야 하니 무리하지 말라고 말이다.

남편 말이 맞다.

마음만 분주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야 식당에서 무언가 해 먹이는 것뿐이다.


저녁식사 시간에 맞추어 도착한 아들과 뼈다귀탕으로 밥을 먹고, 함께 이야기도 하고 놀이도 하다가 야식(치킨)을 먹었다.


14일, 아침 일찍 일어나 자고 있는 큰아들을 깨워 남편이랑 셋이서 가까운 수원지로 산책을 다녀오고, 아침식사는 아들 여자 친구가 가족과 함께 축하하라며 보내준 케이크와 과일을 먹었다.


 아들은 오전 중에 자동차를 점검하고, 생일 축하 겸 진급 축하 선물로 노트북을 엄마 카드로 구입하고 원룸의 식당으로 왔다.  나는 찹스테이크를 점심으로 만들어 먹이며 또 언제 휴가 올 수 있냐고 성급한 질문을 했다.


나의 이러한 질문엔 이유가 있다. 지난 8월 코로나 재확산으로 인해 휴가를 못 가졌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이번 달 아들 생일 즈음에 휴가를 기대했었다. 뿐만 아니라 그에 맞춰 설악산에 가자고 계획을 잡고 3주 전부터 아침마다 수원지나 산성 쪽으로 산책을 다니며 다리에 근육을 단련했던 것이다. 아들은 혹시 가능하면 그렇게 하겠노라고 말을 했는데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란 대답처럼 받아 들었고 이날을 기다리던 상황이었다.


아들은 그런 부모가 재미있는지 커다랗게 웃음을 흘렸다. "하하하. 일단 설악산엘 가세요, 제가 갈 수 있으면 그쪽으로 갈게요. 만약 못 가면 두 분이서 데이트하시면 되죠." 역시나 아들다운 현답이다.


머리를 손질하고 오전에 못 본 일들을 정리한 후 저녁식사 시간에 맞추어 또 원룸 식당으로 온 아들에게 한우를 구워 먹이며,

"내일이 생일인데 뭐 해줄까?"

"허허, 또 뭘 먹나요?"

"일단 밥 먹고 정리하고 마트로 함께 가자, 가서 골라보자."


그래서 도착한 마트,

아들이 말했다.

"전 이제 라면이 먹고 싶어요."

"엥, 생일 아침에 라면을 먹겠다고?"

"고기도 너무 많이 먹었고, 케이크도 먹었고, 집에 오면 라면 먹고 싶었는데 아직 못 먹었잖아요. 그러니까 라면 끓여주세요."

아주 잠깐 망설였고 바로 대답했다.

"그래 라면 먹자, 예부터 생일에 면을 먹으며 장수를 기원하기도 했어. 점심 전에 출발해야 하니까 아침에 라면 끓이지 뭐!"

"그럼 라면에 새우도 넣을까요?" "그러자."

"여기 홍합도 있네, 이것도 넣어 주세요."  "그럴게."

뭔가 더 좋은 것 해 먹이려 찾아간 마트에서 라면과 새우 홍합만 사들고 들어왔다.


어제 14일 밤에는 늦은 시간까지 놀지를 못했다. 나의 독서모임 서평 마감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제방에서 생일 선물로 구입한 노트북을 가지고 이것저것 하는 소리가 거실까지 들렸다. 얌전히 숙제를 하려고 하나 마음은 아들방, 콩밭으로 향했다. 억지로 서평 초안을 잡고 시계를 올려다보니 자정이 넘었다. 아쉽지만 함께 놀기는 포기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산책은 생략하자고 남편과 합의를 보았다. 지난밤에 써놓은 서평을 읽고 고치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버리고, 책을 뒤적거리다 재빨리 멈췄다.



주방으로 가서,

새우와 홍합을 손질하고 냄비에 물을 채우고 라면을 봉투에서 분리시켜 놓았다.

물이 끓기 시작할 때 각방을 다니며 식구들을 깨웠다. 남편, 큰아들, 막내아들에게 라면의 생명은 면발에 있다고

어서 일어나서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도 했다.


그렇지 않은가 밥이야 식어도 그냥 먹을 수 있지만 라면이 불어버리면 무슨 맛으로 먹겠는가?

그냥 라면도 아니고 생일라면인데 맛있게, 최대한 쫄깃한 면발이 살아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식구들을 깨우고 홍합과 새우를 냄비에 투하하고 다시 끓기를 기다렸다가 식구들을 또 불렀다. 라면을 넣기 전에 모두  식탁에 앉히는 것이 목표다. 나의 수선스런 말과 행동으로 일단 목표는 달성했다.


막내아들이 먼저 나와 김치와 숟가락만 놓여있는 식탁을 쓱 보더니 화장실을 다녀오고, 샤워 끝낸 남편이 큰 대접을 꺼내 주었다.

드디어 주인공 큰아들이 기지개를 켜면서 자리로 앉았다. 라면을 투하하고 젓가락으로 여러 번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공기와 접촉하는 면의 양이 많을수록 쫄깃하다는 설을 정설처럼 믿으며 현란한 손놀림을 해댔다. 나름 꽤나 맛있는 홍합 새우 라면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혼자서 신이 났다.

끓는 물에 홍합과 새우 투하
식구들을 모아 놓고 라면까지 입수 완료

완성된 라면을 식탁에 짠! 하며 올렸더니 남편이 나더러 축하기도를 하랜다.

어라, 이건 내 대본에 없었는데,

기도 해야지, 그럼 생일 축하 기도.

마음은 오직 라면의 쫄깃한 면발에 집중되어  속사포처럼 감사기도를 하고, 기쁨에 찬 목소리로,

"먹자!"

했더니만, 막둥이가 한마디 한다.

"그깟 라면이 뭐라고 기도를 그렇게 대충 하세요, 제대로 하셔야죠"

막내아들 말이 맞다.

라면에 정신이 팔려 서평도 대충 던져 놓고, 식구들 정신 사납도록 어수선 떨고 , 기도도 장난처럼 해버렸다.

솔직히 알고는 있지만 지적당하니 슬쩍 맘이 상했다.

"큰아들 생일라면이라 그랬는데"라고, 변명을 하려다 말았다.

큰아들과 남편이 상한 내 맘을 눈치채고 라면이 쫄깃하고 맛있다고, 국물이 시원하다고, 낳아주셔서 고맙다고, 아침부터 라면 먹어도 나름 좋다라고 둘이서 연거푸 칭찬을 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막내아들이 한마디 더했다.

"라면이 불면 좀 어때서, 먹다 보면 어차피 부는데."

이 말에 부풀어 있던 마음속 바람이 피식 웃음소리를 내면서 빠져나갔다.

그렇다. 의미를 아무리 부여해도 라면은 라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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