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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Mar 14. 2020

정임이의 막걸리  ​

그 아이는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

정임이가 7살 때,

아버지는 방경재 밭으로 지게를 지고 일을 가시며 새참으로 막걸리 한되를 받아오라고 이르셨다.

햇살이 따가워지는 시간,

아랫말 송방에서부터 양은 주전자에 막걸리를 받아 촐랑거리며 방경재로 가는 길이 어린 정임에게는 힘겨웠다.


두 팔로 끌어당겨도 주전자 안에서 출렁거리던 막걸리는 꼭지로 주룩 튕겨져 흐르고 몇 걸음 옮길 때마다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이 얼굴을 타고 내렸다. 목이 마르고 지쳤다. 방경재로 가는 길은 멀기만 했다.  목이 마르니 주전자는 더 무거웠다. 한참을 가던 정임이가 나무 밑에서 쉬다가 주전자 주둥이에 제 주둥이를 대고 쭈욱 빨아 마셨다. 쓴맛과 단맛이 어우러진 그것이 제법 시원했다.  또 한참을 막걸리 주전자와 옥신각신하며 걷다 바윗돌에 앉아 쉬다 주둥이에 주둥이를 대고 쭈욱 빨아 마셨다. 조금 전 보다 더 맛있다. 겨우 방경재에 도착해서 아버지 앞에 막걸리 주전자를 내밀었다.


더워서 그런가 얼굴이 빨개졌네, 정임이를 쓰윽 쳐다보시며 한마디 하신 아버지는 흘려넘친 막걸리로 끈적이는 주전자를 건네 받아 뚜껑에 한가득 따라 마신다. 어 시원하다. 곧바로 지게 밑에 막걸리 주전자를 놓아두시고 콩을 거두신다. 정임이는 밭둑을 다니며 풀 구경을 하였다. 뱀 나온다, 풀숲으로 가지 마라, 아버지의 소리가 들린다. 정임이는 일하는 아버지 곁으로 갔다. 집에 가라시면  후딱 가버릴 참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말씀을 안 하신다.


쭈빚거리다 지게 밑으로 가서 앉았다. 할 일이 없다. 주전자를 처다보다 주둥이에 주전자 주둥이를 대어 본다. 힘껏 빨아보았지만 올라오는 것이 없다. 주전자를 두 손으로 들고 주둥이에 부어 본다. 왈칵 쏟아진 막걸리를 벌컥 먹어버렸다. 


돌멩이 하나 주어서 꽃그림을 그렸다. 꽃들 속에서 잠자리가 날아다닌다. 잠자리를 바라보고 있던 정임이도 하늘을 난다. 지게 아래 핀 꽃 위에서 정임이가 날아 다닌다.


이것이 제법 무거워졌네, 아버지 무슨 일이에요. 조심해서 내려요, 막걸리를 마셨나 취해서 잠이 들었지 뭐니, 그래서 지게다 업고 왔네 허허. 

에고 정임아 정신 차려봐 얼른 일어나, 학교에서 돌아온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일어나지지 않았다. 사실은 계속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정임이는 하늘을 더 날고 싶었다. 아버지의 지게를 타고 더 날아다니고 싶었다.


정임이는 어릴 적 나의 애칭이다. 그날 지게 아래서 잠든 나를 아버지는 지게에 업고 내려오셨다. 그날의 잠은 참으로 행복했다. 지게에서 조심스레 안아 내리시던 기억이 소중하다. 나는 소주를 마시지 못한다. 목구멍에서 막혀 숨이 멎을것 같은 답답함이 있다. 지게잠을 잤던 몇년 뒤부터 아버지는 많이 아프셨고 그 아픔을 술로 화풀이 하셨다. 주사가 심해서 견디기 힘들었던 기억이 소주를 거부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막걸리는 늘 좋다. 달달한 막걸리는 아버지의 다정함을 상징한다.

이 글은 아버지와 좋았던 기억이 많지 않은 나 때문에 맘이 아픈 언니들을 위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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